도서관 옥상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작은 텃밭 가꾸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을 했다. 작은 공간을 받아서 상추와 다른 채소들을 키우는 데, 예쁘게 잘 자라던 상추에게 어느 날 이상한 게 생겨났다. 애벌레가 생겨나서 상추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애벌레가 하나 생긴 것을 보고 아이는 소리 지르며, 벌레가 정말 싫다며 죽이고 싶어 했지만, 애벌레가 생각보다 많은 양을 먹는 걸 몰랐던 나는 애벌레도 배가 고프니까 먹는 것 같다며 그냥 두자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애벌레는 점점 번식을 해서 상추를 다 뜯어먹었고, 그렇게 직접 상추가 다 사라져 가는 것을 본 후에야 나는 애벌레를 잡기 시작했다. 애벌레를 발견할 때마다 아이처럼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를 애써 속으로 깊이 삼겨버리고 최대한 손에 안 닿게 휴지로 감싸서 죽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 마리는 족히 죽인 것 같다. 큰 밭이었더라면, 일부를 애벌레들에게 떼어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작은 텃밭 속 수십 마리의 애벌레를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애벌레와의 작은 전쟁으로 그 끝을 냈다.
베일리의 <달팽이 안단테>에서 저자는 아파서 누워서 지낼 때 우연히 얻게 된 달팽이 한 마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다. 누워서 지내야만 하는 그녀 자신이 빠르게 움직이지도 않고 웅크려 지내던 달팽이와 비슷한 처지처럼 느껴졌던 건지도 모른다. 달팽이와 지냈던 시간 덕분이었는지 그녀는 좀 더 기력을 회복해서 그녀가 지내던 그리운 시골집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달팽이와 함께 하던 시간 동안 쌓아진 유대감이 그녀의 적막한 생활을 잔잔하지만 좀 더 생기 있게 만들었다. 달팽이는 처음부터 대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그녀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는 우리 그 어느 누구도 알 수는 없겠지만 달팽이가 그녀의 고독한 삶에 영혼을 불어넣어 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기에 저자가 아팠던 20년의 시간 동안 달팽이와 함께 한 1년이 그리워진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내 작은 텃밭에 있는 애벌레를 저자 베일리가 봤더라면, 아마도 나처럼 상추 잎을 한 장 한 장 들춰내며, 다 죽이고 알까지도 다 없애버리려고 애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애벌레가 어떤 벌레로 부화하게 될지 궁금해서 한두 마리는 살려두었다가 어른 벌레가 되고 나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꼭 그녀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 책을 먼저 만났더라면, 나는 애벌레를 다 죽이지는 않고 한두 마리 남겨놨다가 어떤 벌레가 되는지 지켜봤을지도 모르겠다.
2년째 길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도시에 살면서도 흙을 만져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매일 물주며 챙겨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은 내게 소소한 재미를 가져다준다. 내가 작은 텃밭에서 느끼고 있는 즐거움처럼, 공존이라는 것은 꼭 무언가 크고 엄청난 일을 해야지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가 살아갈 수 있도록 작은 틈을 열어주는 것, 이를테면 애벌레 한두 마리쯤은 다른 자연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은 작은 일이 이 시대 우리가 공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