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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나 Jun 27. 2023

일 년 동안 불을 켜고 잤다 (1)

평화로운 혼자 라이프를 망치러 온 그놈과의 이야기

나는 혼자 사는 게 참 좋다.


혼자서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외롭지 않다. 하지만 때론 혼자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혼자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고 느끼게 될 때, 문득 서러워질 때가 있긴 하다. 그중 혼자 사는 게 가장 서러워지는 순간을 꼽으라면 나는 바로 말할 수 있다.


바로 ‘그놈’이 나타났을 때다.


그놈은 조용하고 약삭빠르다. 어쩌면 나보다 머리가 좋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놈은 단단하지만 꽤나 유연하다. 어디든지 나타날 수 있고 어디로든지 사라진다. 나보다 빠르다. 늘 내가 먼저 쫄아버리는 걸로 봐서는 나보다 기도 센 것 같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그놈이 있었다.


이쯤 되면 그놈에 대해 대충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그놈은 바로 바퀴벌레다.

풀네임을 적는 것조차 소름 끼치니 ‘그놈’이라고 지칭하겠다.




어릴 적 그놈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집이었던 외할아버지댁에 가서 마주쳤던 엄청난 크기의 그놈을 제외하면… 딱히 기억이 없다. 그놈에 대한 기억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놈이 내가 혼자 살기 시작한 후부터 내 인생에 등장했을 리는 없다. 그놈은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나 있고, 또한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어려서 그놈에 대한 기억이 없었던 이유는, 내가 그놈과 직접 상대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고, 아마도 내가 ‘악!’ 하며 손가락질하면, 든든한 부모님이 그놈을 사정없이 때려잡아주었으리라. 그러면 나는 다시 안심하고 간식을 먹든지, 투니버스 채널에 다시 집중하든지, 대수롭지 않게 다른 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살고 나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놈과의 악연은 나의 두 번째 집, 이라기보다는 자취방에서 시작된다. 외관은 꽤 깨끗했고 집 안도 깔끔해 보여서 계약한 단독 빌라형 원룸이었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이 현관 앞에 있었고… 그곳은 주로 대학생들이 자취하는 원룸촌이었고… 주인분은 매일매일 음식물 쓰레기통을 치워주지 않으셨다.


퇴근하고 주차장에 들어서고 주차장 센서등이 들어오면, 그놈’들’이 후다다닥 사라진다. 그중 한 놈이 현관문 쪽으로 향한다. 안돼!! 나 들어가야 하는데! 원룸 현관 앞에서 그놈과의 대치가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눈과의 눈싸움. 어디냐 눈이. 알 순 없지만 녀석도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 제길, 내가 졌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들어가기로 한다.


두 번째 집에서 그놈들이 내 인생에 노크를 했다면, 세 번째 집에서는 그 놈들이 드디어 내 인생을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넓은 크기와 베란다에 반해 덥석 계약한 세 번째 집은 20년 된 원룸형 아파트였다. 꽤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파트였고, 실내 역시 깨끗하고 쾌적해 보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놈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문제는 어느 날 베란다 대청소를 하면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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