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인 Aug 06. 2022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_김영민

마침표는 회피의 수단이었습니다.

선물 받은 책을 읽지 않은 채 있다기에 꺼내 들었는데 책 앞표지에 저자가 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단풍잎이 떨어져 물에 흐르지 않았다면 타츠타 강물의 가을을 그 누가 알 수 있었을까."

한 번에 이해되지만 두 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 많지 않고, 그래서 발견하면 매우 반가운 그것을 읽고도 책을 읽지 않는 건 독서를 취미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의 자격을 잃는 것 같이 느꼈다. 적어도 이 문장을 곱씹는 내게 타츠타 강은 뭐지라고 묻는 사람에게 읽히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건져왔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추석에 대한 재밌는 칼럼을 쓴 사람이 이 책의 저자인 것은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하기에 비교적 상냥한 글을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니 물음표가 많은 글은 따끔거려서 싫다. 정곡 찔려서 그렇대도 할 말이 없겠다. 능력주의에 절여진 채 오래 살아 그런지 저자의 어찌 보면 상냥한(많이 배운 자가 써낸 쉬운) 글에도 생각이 다르거나 관심 없는 주제라면 숭덩숭덩 넘기는 데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끝까지 읽었다. 솔직히 1/3은 가슴까지 닿지 못해 아마 며칠 후면 휘발될 텐데, 그래도 꽤 많은 부분이 기억하고 싶고 또 노력하지 않아도 기억될 것 같아 기록한다.


p.27 핵심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면 거치게 된다는 심리 변화 4단계, 부정-분노-체념-인정을 오롯이 밟아나가는 것이다. 자신은 충분히 단련되어 있으므로 그중 어떤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고 자만하지 말자.


p.44 그렇게 연민을 가질 때, 사람은 비로소 상대에게 너무 심한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p.60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과거를 부정하기 위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파괴하려 들었던 것이다. 하나의 통합된 인격과 내력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한 것이다.


p.134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몽타주는 필름에 대해 죽음이 삶에 행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p.148 스가 아쓰코에 따르면, 과거의 향기는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 마법을 써서 돌아간다 해도 같은 향기를 반복해서 음미할 수는 없다. 이제 공동체는 개인의 고독을 인정한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더러움을 찾아 떠나는 무심한 로봇청소기처럼 앞으로 나아갈 때다.


p.175 태어난 이후의 삶은 자유와 그에 기초한 존엄을 쟁취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으로 상당 부분 채워진다. 양육자의 의존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대소변을 가리고자 하며, 보호자의 물적 지원으로부터 벗어나 각자의 생업을 통해 밥을 벌어먹고자 하며, 자기 심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각종 억압에 저항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일정한 심적, 물적 자원이 확보되면, 그 자원을 활용하여 자기 인생의 독특한 이야기를 쓴다.


p.334 행복보다는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쪽이다. 행복이 단지 기분이 좋은 걸 의미한다면, 나는 우리 사회에서 행복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돼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 옮겨 놓은 문장 중 저자의 것과 인용된 것이 섞여 있다. 글을 쓸 때 머릿속을 부유하는 형태 없는 것을 구체화시키고 싶을 때 영 안되면 기존의 것을 빌려 쓰게 되는데 글을 읽으며 이 사람도 그랬을까 아니면 그저 겸손한 태도로 굳이 있는 것을 다른 말로 바꿔 쓰지 않은 것일까 생각했다. 내가 이처럼 자신의 생각을 재미있고 리듬감 있게 써낼 수 있다면 나는 모르는 척 슬쩍 그럴듯하게 내 것인 양 바꿔치기했을 텐데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의 빌라_백수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