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인 Aug 26. 202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_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 세상에 베르테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어릴 적 늦은 밤 하는 영화에 15세 혹은 19세 관람가 딱지가 붙어 있으면 내용이 더 궁금해지곤 했다. 그리고 어른들의 표정으로 기분을 추측할 만큼 다 컸는데 왜 보면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됐다. 나중에 커서 보렴 그 말이 얼마나 애석하게 들렸던지. 나는 이 책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중간중간 만화가 삽입된 청소년 고전 명작 시리즈로 접했다. 책 속 베르테르는 장발이었고 프릴이 잔뜩 달린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그 낯선 외양부터 시작해 그의 감정선을 도무지 따라가기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반에 좋아하는 애들을 순위 매기고 오늘은 얘를 좋아했다 내일은 쟤를 좋아할 어린 내가 이해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서른이 넘어 다시 읽으면 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작은 기대로 책을 펼쳤다.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본인을 이해해 줄 사람은 오직 로테뿐이라며 몸서리치며 죽음을 택한 게 아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그의 일생을 이해하고자 두 번이나 시도했음에도 이해하지 못했으니.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건 괴테의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통찰력이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사람이어도 카테고리화하자면 틀에 들어가게 되고 그렇다는 건 제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봤자 본인 혹은 비스름한 사람들뿐인데 괴테는 해낸다. 양 극단에 있을 것 같은 베르테르와 알베르트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소름이 돋았다. 괴테는 베르테르 같은 사람이어서 알베르트와 같은 사람들을 묘사할 때 조금 덜 친절한 부분도 부정할 순 없으나 불친절한 설명까지 오히려 그 특성에 맞아 불편하지 않게 읽혔다. 옛날 글인데도 요즘 사람들이 읽어도 머리를 탁 칠 내용이 곳곳에 있다. 다 읽고 나니 포스트잇으로 도배된 책. 요즘같이 한 문장으로 떨어지지 않고 긴 묘사 때문에 좋은 글귀를 적는데 약간 애를 먹었다. 나는 태생이 구구절절해서 그런지 비슷한 감정을 반복하고 길게 이야기하는 게 싫지 않았다. 베르테르를 이해하지 못해도 결국 응원할 수밖에 없는 강한 모순.


​p.43 책을 읽는다면 제 취향에 딱 들어맞는 책이면 좋겠어요. 저는 책 속에서 나의 세계를 재발견할 있는 작가가 가장 좋아요. 제 삶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제 가족의 삶처럼 흥미롭고 정이 넘치는 이야기를 묘사하며 이야기를 쓰는 그런 작가 말이에요.


​p.64 내 생각에 서로 좋은 날들을 망치면서 간섭하는 것보다 괴로운 일은 없을 것 같네. 인생의 한창 좋은 시절 모든 기쁨을 받아들여도 모자랄 젊은 친구들이, 전성기를 망치고 나중에 가서야 그 어리석음을 깨닫고는 소중한 순간들을 보상받는 게 불가능하단 걸 깨달을 때엔 이미 늦어 버린다네.


​p.67 "결코 그렇지 않아요. 스스로와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죄악이듯 우울도 마찬가지인거죠.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최악이지 않을까요. 하물며 우리 각자가 누려야 할 기쁨까지 빼앗는 상황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지 않나요? 우울증을 앓는 사람 중에 남들에게 티 내지 않고 스스로 견대면서 주변의 흥을 깨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누구인지 알고 싶군요. 우울이란 스스로의 자격심에 대한 불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불만은 어리석은 허영심에서 연유한 질투심과도 연결되어 있죠.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불쾌하고 견딜 수 없는 것이죠."


p.74 M 부인의 상태가 좋지 않다네. 나는 그녀의 회생을 위해 기도하네. 그것으로 로테의 괴로움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


​p.80 야광석을 햇빛 아래 놓아두면 그 빛을 흡수해서 밤에도 한동안 빛을 발한다고 하네. 그 젊은 하인이 내게 그런 존재였네. 로테의 시선이 그의 얼굴과 뺨, 그의 윗 옷의 단추와 외투의 깃에 닿았었다 생각하니,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성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졌다네!


p.90 한동안 내팽개쳐 두었던 일기장을 오늘 우연히 펼쳐 보고 깜짝 놀랐다네. 나는 뻔히 다 알면서도 지금의 이 모든 것을 향해 한 발 한 발 빠져 들고 있었던 걸세! 내 상황을 명확하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린애처럼 행동해 왔더군. 지금도 잘 알고 있지만 나아질 것 같진 않아 보이네.


​p.94 자네도 알겠지만 난 이 친구를 참 좋아하네. 그 "그렇기는 하지만."을 빼고 말일세. 일반적 명제라도 예외는 다 있는 범 아닌가? 그런데 이 친구는 참으로 주도 면밀하단 말일세. 너무 성급히 말했다거나, 막연한 이야기, 혹은 불확실한 얘기를 했다 싶으며 계속 제한하거나 수정하거나 보태거나 하면서 급기야 나중에는 본론은 온데간데없어진다네.


​p.103 "인간은 인간일 뿐이라고요. 조금 더 분별력이 있다 한들 격정에 휩싸여 한계로 치닫게 되면 약간의 이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겁니다."


​p.104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수정해서 개정판을 낼 경우, 문학적 수준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작품에는 손상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야. 그만큼 우리에게는 첫인상이 각별하지 않은가. 인간은 원래 모험적인 것에 쉽게 설득당하지만, 일단 첫인상은 금방 기억에 남아 강하게 자리를 잡는 다네. 그러니 그것을 지우거나 없애 버리는 사람은 후회할 걸세.


​p.119 "자꾸 그러면 건강에 좋지 않아요. 사랑하는 로테! 당신의 영혼이 곧잘 그런 생각에 기울기 쉽다는 것은 잘 알지만 제발 부탁이니..."


​p.128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모든 것을 자신과 비교하고, 또 우리 자신을 다른 모든 것과 비교하도록 만들어졌으므로 우리의 행복 또는 불행은 우리와 관련된 것들에 달려 있다네. 또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독보다 더 위험한 것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겠지.


​p.167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안 될 이유도 없겠지. 그렇지 빌헬름? 로테가 그가 아닌 나와 결혼했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네! 오, 알베르트는 그녀가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것을 전부 들어줄 인물이 못 되네. 그에게는 감수성이 부족해. 그래, 그게 부족하다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자네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게나. 말하자면 이렇다네. 알베르트의 마음은 그녀의 심장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네. 로테와 내가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을 때, 그 대목에서 그녀와 나의 마음은 하나가 되어 뛰지만 그는 그렇지 못해. 제삼자의 행동을 보고서 그녀와 내가 공감의 탄성을 질러 댈 떄도 그는 그러지 못한다는 말이네. 사랑하는 빌헬름! 하지만 그는 온 마음을 바쳐 그녀를 사랑한다네. 그런 사랑이라면 무슨 보답이든 못 받겠나.


​p.171 하지만 나는 대체 왜 이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그렇게도 나를 불안하게 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를 왜 가슴속에 묻어 두지 못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나는 자네의 마음까지도 우울하게 하려는 걸까? 무엇하러 나는 자네에게 나를 동정하고 또 질책할 기회를 주려 한단 말인가? 이 모든 것 또한 나의 숙명 일테지.


​p.176 친구여,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해 주게나. 이 이야기 또한 자네 친구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래, 나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 것이네. 나는 쓰디쓴 실연을 맛본 그 불쌍한 하인이 보여 준 용기와 결심에 반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일세. 그러니 그와 비교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을 일이라네.


​p.190 인간관계가 이토록 냉정하고, 서로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나는 가끔 내 가슴을 찢어 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네. 아아! 사랑도, 기쁨도, 우정과 즐거움도 내가 먼저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면, 상대방도 그 것들을 나에게 주지 않는다네. 그리고 내 마음이 아무리 행복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내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이 냉정하고 무관심하다면 나는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네.


​p.251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베르테르도 그녀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처음 서로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그들의 마음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일치했으며, 베르테르와 오랜 시간을 함께 교제하면서 경험할 수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그녀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녀가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거나 생각했던 일들은 어느 것이나 늘 그와 함께 나누는 데 익숙해져서 만일 그와 헤어지게 된다면 그녀 존재 자체에 다시는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오, 이 순간 그를 오빠로 삼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_김영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