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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인 Oct 11. 2022

최선의 삶_임솔아

그럴듯한 사람이 되려면

언제였지, 꽤 예전에 친한 친구가 이 책을 권했다.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했었나 그런 말을 덧붙이면서. 나는 멋들어진 제목도 좋아하고, 별로 들어보지 못한 성과 이름의 조합도 좋아하는데. 그런 나의 말 하기 뭣한 취향을 어떻게 알아서는, 역시 내 친구야 생각하고 책을 읽었더랬다. 그리고 나는 또 그 친구가 빌려준 임솔아 작가의 <눈과 사람과 눈사람>을 또 읽었다. 역시 좋았다.

그리고 <최선의 삶>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물론 책을 권한 친구와 함께 보러 갔다. 이 책을 읽을 때와 영화를 봤을 때는 시간의 공백이 있는데 함께 영화를 보고 초밥집의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친구는 말했다. 예전에는 이런 영화가 좋았는데 많이 공감하고 울었는데 오늘은 전과 다른 기분이었다, 동화되지 않는 걸 보니 많이 괜찮아졌나 보다 하며 작게 웃는 친구를 보며 그렇다면 정말로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솔직히 그때 나는 그렇지 않아 조금 외로운 기분이었다.


독서모임에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생각나는 책을 가져오라 했을 때 단번에 이 책이 떠올랐다. 그 영화를 볼 때 가슴을 어찌나 쳤는지. 선택지 중 최악만을 고르는 인물들에 대신 더 나은 걸 골라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그것이 최선임을 잘 알면서도. 나는 왜 답답한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한다. 내가 말하면 후진 느낌이고 타인이 말하면 핑계 같다. 정답을 모르는 게 아니라 노력했는데 닿지 못해서 혹은 노력하지도 않아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이 생각 자체가 폭력이고 오만일 것이다. 아직 그럴듯한 인간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강이의 시점으로 써진 책이어서도 있겠지만 소영과 아람보다 강이에게 조금 더 마음을 주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과거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선택 중에 최고의 선택이었던 게 몇 개나 될까. 선택의 결과는 시간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기에 당시 최고였던 선택이 몇 년 후에는 되돌릴 수 없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앙케이트를 하듯 조언을 구걸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택을 혼자 결정하고 후회하지만 나의 최선이 상대의 최선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타인의 이야기를 좀 더 듣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타인의 입김이 들어간 선택은 그들에게 후회와 원망의 감정이 뻗치는 게 싫다며 합리화했지만, 결국 오롯이 내 감정의 안위를 위한 것이었다는걸. 위선이 투명해지는 밤이다.



p.12 무서운 것에 익숙해지면 무서움은 사라질 줄 알았다. 익숙해질수록 더 진저리쳐지는 무서움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p.15 아람은 집이 싫어서, 나는 밖이 좋아서 우리는 함께 집을 나갔다. 집에서 받은 상처를 길에 조금씩 버리듯 아람은 매일매일 자신의 상처를 내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아람은 집보다도 길에서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집에서 받은 상처 따위는 어린아이의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받은 상처를 시시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집이 아니라 길을 선택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집도 시시하게 여길 수 있었다.


p.31 질문은 늘 숨이 막혔다. 어떤 질문도 우리가 궁금해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를 의심 했기 때문이다.


p.88 하지만 최선의 결과만을 원하는 아이는 우리 중 소영뿐이었다. 우리는 다만 최악의 결과가 두려울 뿐이었다.


p.130 책가방에는 식칼 한 자루가 늘 있었지만,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까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식칼이 있다는것을 아는 것도 나 혼자였고, 그 식칼을 무서워하는 것도 나 혼자였다.


p.174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나는 이제 읍내동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읍내동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소원도 이상한 방식으로 도래해 있었다. 언제 그칠지는 알 수 없지만, 쉽게 녹아 사라지진 않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상하고,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좋은, 함박눈이었다.


수상소감 중 이 문장을 되새기며 열심히 글을 쓰자 다짐했다.


p.176 내 경험을 나열하는 것으로는 소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처음 배웠다. 불가능성에 개연성을 부여하려고 나의 잡다한 욕망들과 어지간히 싸웠다.


임솔아.. 멋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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