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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인 May 13. 2023

수치심 탐구 생활_사월날씨

지금까지 지나친 수많은 별 거에 대해서

부쩍 감정조절에 실패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없어 실제로는 모르겠다만, 타인에게 보여지기로는 감정기복이 심하다고 느껴지지 않게 잘해왔다고 나름대로 자부했는데 요즘은 어쩐지 번번이 실패다. 어느 날엔 내 생각과 다른 상황에 울컥 화가 났다. 한숨을 열 번 넘게 쉬고, 일기장에 알아보지 못할 글씨로 마구 갈 겨 적고도 좀체 가라 앉지 않아 몇 시간을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기로 시간을 죽였다. 모든 것을 차단하고 지금에 와서 가만히 앉아 몇 시간동안 미뤄뒀던 감정이 밀려들어오는 것을 하나하나 복기할 땐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에 약간 숨이 막힌다.

잔인한 걸 못 보면서도 더글로리를 재밌게 봤던 건 받은 받은 사람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방식 때문이었다. 내가 괴로운 것은 자연재해와 같은 불행과 슬픔 그 자체가 아니라 내게 그것을 주는 사람은 내 인생에서 너무나 쓸모없는 사람이고, 그것이 쌓여 터질 때 폭탄 돌리기 하듯 건네주는 사람이 내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하등 쓸모없는 걸로 괴로워하고 무척 중요한 것을 하찮게 여긴다는 것을 인지할 때는 아무리 아껴주고 싶은 자신이라도 쉽지 않다.


친구에게 책을 건네받은 후 꽤 오래 펼쳐 보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몇 장, 일찍 깬 날 또 몇 장 이렇게 조금씩 결국 모두 읽어냈다. 친구의 흔적이 있는 밑줄 덕분에 더 빨리 읽어낼 수 있었다. 속이 시끄러운 날 그만 덮어야겠다 생각했을 때 옆 장에 밑줄의 흔적이 있으면 어떤 문장일까 궁금해서 한 장 더 읽어냈다.

유전의 영향이든, 자라온 환경이든 가족들은 서로 닮아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가족중에 가장 공감받지 못할, 교집합의 크기가 가장 작은 사람은 아무래도 외롭다. 목소기를 낼 수 있기 전에는 어떻게든 그들의 모습을 흉내내지만 어느정도 나이가 먹으면 그들을 비난하기 일쑤다. 그래야만 내가 정답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소심한 게 아니라 배려심이 넘치는 거야. 너는 솔직한 게 아니라 무례한 거야. 뭐 이런 식으로다가-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알고 있다. 누구 하나 틀린 사람이 없다는 걸. 그저 정답이 있다고 믿는 그 마음이 틀렸다는걸. 하지만 그 다름을 틀렸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솔직하지 못해서 흉내 내다 부정하다를 옮겨가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이제는 진짜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은 밤에 다시 태어날 것 같이 굴었다가도 타인과 섞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연기하며 지내는 거다.

수많은 단어들에 수치심과 자기애를 두었을 때 몇 명이나 이 두가지의 유사성과 연결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나는 다행이 좋은 친구를 뒀고, 그래서 이 책을 읽어서 운이 좋게 노력하지 않고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나는 그대로 돌려주지 못해 힘들었던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충분히 힘들어해도 되는 상황을 그깟 상황으로 쪼그라트리고, 보이는 것 너머의 것들을 상상했던 것이 날 괴롭혔는지도. 어쩌면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는 한숨 대신 질 좋은 식사를, 나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일기장에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p.23 자의식이 나를 나로 만든 무언가로서 톡톡히 기능해 왔겠지만 과도한 자의식은 수치심의 토대 또한 되어버린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의식하는 마음, 세상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 끝없이 두리번거리는 마음이 비교와 평가를 만들어낸다.


p.24 나를 이해하고 내가 선 땅을 해석하는 게 수치심을 읽어내는 일이다.


p.33 감정에 무던한 것과 감정이 마비된 것은 겉으로 드러나기에 그리 다르지 않아, 상황이 괜찮을 때는 대체로 원만하고 담담하게 지냈다.


p.37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볼 만한 감정적 유연성을 지니지 못한 상태로 내가 가진 대응방식은 하나였다. 참고 억누르고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흔적을 지우고 깨끗한 허공으로 만드는 것. // "아무렇지도 않아. 그게 뭐? 인생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 남겨놓은 감정, 해결하지 않은 감정, 느껴야 할 때 느끼지 않은 감정은 언제고 값을 치르러 온다.


p.42 실패를 피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실패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하지 않는다.


p.54 나는 자꾸만 나 아닌 무언가가 되려 한다. 자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 집착하나 그럴 때 상정하는 자신조차 지금의 내가 아닌 어딘가 먼 이상향에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p.56 수치심이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선행되는 방어다. 세상에 나가 깨지기 전에 나를 스스로 깨트려 놓음으로써 불확실한 상처에 대비해 확실한 상처를 미리 내놓으려는 의도다.


p.59 수치심에는 '자기애의 감춰진 동반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p.79 자기 자신에게 예외를 많이 둘수록 건강하다.


p.94 누군가를 우월하게 여긴다면 상대적으로 나를 열등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인격과 사고의 깊이로 평가를 내리고 나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하면 그를 이상화한다. // 이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옳다.


p.124 존재 가치가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믿음은 인간을 불안에 떨게 한다. 최상의 능력을 증명해내지 못하면 쓸모없는 존재가 될 거라는 두려움은 자신의 취약성을 감추려는 동기가 된다.


p.146 아무 존재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정말로 아무 존재도 아닐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미 수치심의 심장에 깊이 새겨 놓았으면서 "정말로 그렇진 않지?"라고 다른 사람을 붙잡고 애원하고 싶다.


p.198 수치심은 나를 믿지 못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해 주는 다른 이도 믿지 못하게 만드는 끔찍하게 외로운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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