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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인 May 24. 2021

이제는 메로나를 던지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나는 31살이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서도 꽤 오래 돈을 뜯겼다. 교복을 입게 되면, 키가 남들만큼 자라면 건드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오래 그들의 타깃이 되었다. 다짜고짜 왜 째려보냐며 돈을 내놓으라는 유형부터 차비가 없다며 동정심을 자극하는 유형까지 다채로운 이유로 돈을 빼앗겼다. 나는 대부분 망설임 없이 주머니 속을 뒤져 돈을 내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13살 즈음의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깐 쉬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피아노 학원 가는 나날을 보냈다. 가끔 꾀병을 부려 학원을 빼먹을 때가 있었고, 집에 아이스크림이 없어 빈손으로 터덜터덜 걸어갈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학원에 갔다. 그 날이 보통날과 달랐던 건 두어 달에 한 번 돌아오는 교재 값을 내는 날이라는 점 하나였다. 주머니에 만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찔러 넣고 한 손에는 메로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정확히 메로나다.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학원까지 얼마만큼 남은 채 그들에게 붙들렸을까. 아마 중간 정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도로 집으로 내달리기도, 학원을 오고 가는 사람도 없던 중간 어디 즈음에서 불량해 보이는 무리에게 붙들렸다. 그래 봤자 한두 살 위인, 어쩌면 동갑일지도 모르는 그들은 반쯤 먹는 메로나를 들고 이리저리 눈알만 굴리고 있는 나를 보고 비웃거나 욕을 했다. 고등학생이 돼서야 겨우 남들 만해진 나는 그들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나는 그들이 내 또래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돈이 있냐는 물음에 꽤 당당한 어조로 돈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들은 곧 내 주머니를 뒤졌고 그럼 이 돈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좀 더 힘주어 너희들에게 줄 돈이 없다고 다시 대답했다. 그 말과 함께 먹다 만 메로나를 바닥으로 힘껏 집어던졌다. 그 날의 행동은 아직까지 나의 무모한 짓 리스트 중 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메로나가 힘없이 땅에 떨어진 뒤, 샛노란 바람막이를 입고 곱창 머리끈으로 멋을 낸 대략 나보다 십 센티는 커 보이는 여자 아이에게 배를 걷어 차였다. 바닥에 떨어진 메로나 옆으로 나도 함께 주저앉았다. 아이스크림이 녹아 지저분하게 흘렀다. 나도 울고 싶었다.
 퇴근길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 살짝 열린 창밖으로 시끌벅적한 교복 무리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언제부터 저들을 보고도 가진 돈을 머릿속으로 세어 보지 않게 되었지. 새삼 이제는 내게 그런 식으로 돈의 유무를 묻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가진 돈을 모두 내어 줄 텐데. 아무 노력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겼을 뿐인데 나도 모르는 새 불편이 개선되었다. 나이를 먹는 것도 꽤 좋은 일이구나 생각했다. 다가오는 겨울, 어디서 냄새를 풍겨 올지 모를 붕어빵을 대비해 마음 편히 현금을 가지고 다닐 수 있어서 좋다. 망설임 없이 그들에게 오래 시선을 머물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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