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경영진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
아무리 튼튼하고 빠른 경주마라 할지라도, 기수가 엉뚱한 방향으로 고삐를 쥔다면 결코 경주에서 우승할 수 없습니다.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경주마)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 기업을 이끄는 경영진(기수)을 신뢰할 수 없다면 우리의 투자는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워런 버핏은 "형편없는 회사를 유능한 경영진이 인수하면, 결국 명성을 잃는 것은 회사"라고 말하며, 나쁜 사업은 좋은 경영진조차 망가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무능하거나 부도덕한 경영진을 만나면 순식간에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소액주주로서 회사의 일상적인 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본을 믿고 맡길 대리인, 즉 경영진을 평가하는 것은 투자의 성패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경영진을 평가해야 할까요?
경영진 평가의 첫 번째 기준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직성(Honesty)입니다. 경영진이 주주들을 동등한 사업 파트너로 생각하고, 투명하고 솔직하게 소통하는지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최우선 과제입니다.
언행일치: 경영진이 과거 주주들에게 약속했던 것들을 얼마나 잘 지켜왔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주주 서한이나 실적 발표회에서 제시했던 비전과 목표가 실제 경영 성과로 이어졌는지 살펴보십시오. 입으로는 주주가치를 외치면서, 뒤로는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경영진은 최악의 파트너입니다.
투명한 소통: 좋은 소식뿐만 아니라 나쁜 소식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공유하는 경영진을 신뢰해야 합니다. 실적이 나빠졌을 때 그 원인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영진은 장기적으로 믿고 동행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문제를 숨기거나 변명으로 일관하는 경영진은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거 이력: 경영진의 과거 평판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과거에 분식회계나 배임, 횡령 등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적은 없는지, 잦은 인수합병과 유상증자로 기존 주주들의 가치를 희석시킨 적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정직함이 기본 바탕이라면, 두 번째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능력(Competence)입니다. 열정만 가득한 무능한 선장은 배를 산으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경영진의 능력은 결국 과거의 실적이 가장 객관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운영 능력: 해당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장기간 꾸준히 높은 수익성을 유지해 왔는가를 봐야 합니다. 시장 점유율, 매출 성장률, 이익률 등 장기적인 실적 추이를 통해 경영진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업을 운영해왔는지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위기관리 능력: 예상치 못한 산업의 위기나 경쟁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경영진의 진짜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좌초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삼아 회사를 한 단계 성장시킨 이력이 있다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미래 비전: 과거의 성공에만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혁신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었는지도 중요합니다. 경영진의 인터뷰나 주주 서한 등을 통해 그들이 가진 산업에 대한 통찰력과 미래 비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기준은 가치투자자들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본 배분(Capital Allocation) 능력입니다. 기업이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는 것이 바로 자본 배분이며, 이는 CEO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입니다. 경영진에게는 다음과 같은 선택지가 있습니다.
사업 재투자: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신사업에 투자합니다.
인수합병(M&A): 다른 회사를 인수하여 성장을 꾀합니다.
부채 상환: 재무 건전성을 높입니다.
배당금 지급: 이익을 주주들에게 현금으로 돌려줍니다.
자사주 매입: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을 사들여 주당 가치를 높입니다.
훌륭한 경영진은 어떤 선택이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가장 크게 높일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행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현저히 저평가된 상황이라면 배당보다는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주주에게 더 유리합니다. 반면, 마땅한 투자처가 없음에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에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주주의 돈을 낭비하는 최악의 자본 배분입니다.
우리는 경영진의 과거 자본 배분 이력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얼마나 주주 친화적이고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업의 이익이 온전히 우리의 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핵심적인 척도입니다.
지금까지 논의한 경영진 평가의 세 가지 황금률은 모든 시장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칙입니다. 하지만 한국 주식시장의 특수한 환경을 고려할 때, 우리는 한 가지 현실적인 주의사항을 덧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시장이 비교적 주주 행동주의가 활발하고 전문경영인(CEO)의 독립적인 역할과 책임이 강조되는 반면, 한국 시장의 많은 기업은 여전히 창업주나 오너 일가의 영향력이 절대적입니다. 이런 지배구조 하에서는 전문경영인의 능력이나 철학보다 오너의 의사결정이 장기적인 주주가치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경영진을 평가할 때, 우리는 CEO 개인의 역량과 더불어, 혹은 그 이상으로 지배주주인 오너의 과거 행적, 자본 배분 이력, 그리고 주주에 대한 태도를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일부 가치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에서 경영진의 질적 평가 비중을 미국 시장보다 다소 낮추고, 대신 기업의 자산가치나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견고함에 더 큰 비중을 두기도 합니다. '훌륭한 경영진'이라는 변수가 워낙 희소하고 통제하기 어렵다 보니, 차라리 '경영진이 크게 망가뜨리기 어려운 압도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을 찾는 전략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영진 평가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한국 시장에서 위대한 투자 대상을 찾는 것이 얼마나 더 다층적인 분석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상적인 원칙을 견지하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시장의 현실을 정확히 인지할 때 비로소 실수를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