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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에스 Sep 09. 2023

Prologue. 팀원은 없지만 팀장님입니다.

이곳에선 남들과 다른 기세가 필요하더랬다.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이다. 이름? 매니저? 담당자? 후보는 많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건 내 이름이 아니라 직함이다. 매니저는 회사 안에서 불리는 직함이지만 바깥에서 나를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담당자는 허구한 날 이메일 하단에 쓰는 단어이니 이 또한 맞지 않는다. 그렇게 내가 내뱉은 말은 “ㅇㅇㅇ 팀장입니다.”였다.


당시 우리 회사는 10명이 안 되는 직원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회사였는데, 팀장님이라니. 내 말을 들은 상대방은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아차 싶었던 건 나뿐이었다. 당황도 그때뿐, 나는 나를 이야기할 일이 생길 때마다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아무도 나에게 주지 않은 직급을 나에게 내가 준 것이다. 직원 10명이 넘은 지금 회사에서 여전히 나는 팀원 없는 팀장님이다.


팀원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팀원이 없어도 될 만큼 내가 동분서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봤던 직장인들 공감 밈처럼 ‘안녕하세요~ 저는 에이전시,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담당 겸 스튜디오 관리 겸 홍보팀 겸 인사팀 겸 회계팀 겸 파워링크를 관리하는 ㅇㅇㅇ 팀장’이라고 나를 소개할 수 있겠다. 누가 시켜서 했다면 절대로 하지 못할 일이다. 나 스스로 ‘팀장님’이 된 이후 내면적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느낀다. 외부 일정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다른 사람들이 말해주는 팀장님이라는 호칭은 내 귀를 녹인다. 팀장님 대접이 황송하면서 받은 만큼 부지런히 움직인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니, 사회생활은 기세라는 생각이 든다. 없어도 있는 척, 있어도 있는 척. 일단 저지르고 나중에 해치우면서 된다. 이런 발칙한 방식은 지금까지 잘 통하고 있다.


이 글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개인적인 기록물인 동시에 여러분께 보여드리는 교환 일기이다. 교환일기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이야기도 댓글을 통해 알려주면 좋겠다. 내가 쓴 글이나 하는 일에 대한 질문도 환영이다.


앞으로 아무런 연고 없던 내가 영상제작사에 들어간 이야기부터 배우 에이전트가 하는 일, 갖추고 있으면 좋을 소양, 에이전트로 일하며 겪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보따리 풀듯 펼쳐놓으려고 한다.


전공이 아닌 분야에서 일하고 있거나 새로운 업무를 헤쳐나가고 있나요? 같은 경험을 하는 저를 보며 마음속 깊은 공감과 위로를 얻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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