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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의림 Dec 29. 2023

아듀 2023년

이젠 좀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홀로 하는 종무식 @스타벅스


그 어느해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정말로.. 정말로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퇴사와 개업 결심, 출산, 그리고 육아와 개업. 어쩌다 보니 이 엄청난 일들을 올해 안에 다 하고 말았다.


4월 29일에 유비를 출산했고, 8월 7일부터 개인사업자로서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자체 출산휴가를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달리,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 약간의 불안감과 일에 대한 갈망에 시달렸다. 계획에 없던 퇴사와 출산, 이사 등으로 지출이 엄청나게 증가해서 불안했고, 내 머리는 '어떻게 일에 복귀할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런 불안과 갈망 속에서도 아기와 짧고 굵게 밀착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아기는 밤잠 자기 전엔 절대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아기였어서 하루 종일 아기를 안고 재우고 안고 놀아주며 보냈다. 그 와중에 집안꼴 더러워지는 건 못 봐서 아기 안고 틈틈이, 아기가 밤잠 든 직후에 이리저리 움직이며 집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했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를 지경이었지만 어찌저찌 많은 것을 해냈다. 이 과정에서 미미했던 엄마로서의 정체성, 살림을 하는 일상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열심히 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월까지는 역할놀이를 하는 기분에 종종 사로잡혔다. 이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한 명의 사람을 키우고 내 손으로 돈을 번다고? 내가 어른이라고? 말도 안돼. 이 모든 게 어릴적 하던 역할놀이같아.' 하고 생각했다.


어릴 때 애어른같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돌이켜보면 마냥 해맑고 어리광부리고 싶은 아이였는데 겉으론 성숙했다. 그땐 연령과 괴리된 내 모습을 썩 좋아하진 않았어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었다.


근데 막상 진정 어른의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오니 이 모든 것이 아주 비현실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직 충분히 응석부리지 못한 아이가 내 안에 있어서일까? 왜지? 하고 생각해봤다.


애어른 원의림은 부모 특히 부친에게서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아이였는데, 이제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온전히 독립을 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양육하고 나만의 살림을 꾸리는 것, 이것은 독립적 어른의 가시적이고 명확한 지표였다. 이 명확한 지표 앞에서 한참을 눈을 비비고 서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달라진 나에게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11월과 12월엔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보냈다. 아침과 저녁엔 아이 보고 낮과 늦은 밤엔 일하며 정신없이 몇 개월을 보내고 나니 하나의 인격체와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어른, 원의림에 이제야 좀 익숙해지는 기분이다. '아, 나 어른이구나.' 하고.


커리어의 변화, 가족구성원의 변화, 그리고 이사 등 각종 변화의 쓰나미에서 생존해내고 아기라는 존재에 이전에 쏟아본적 없는 사랑을 쏟아붓고 나니 1년이 훌쩍 지났다. 그렇게 지나 보내고 나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듯 아프다. 출산한지 8개월이 지났는데도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아기를 재우고 나면 손목과 발목이 시리고 온몸이 쑤신다. 이제서야 '몸을 챙겨야겠다.'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십대 때 수년간 만성적 두통과 근육통, 집중력 저하에 시달렸었고 이후 요가와 쉼을 통해 회복하는 기간을 지나면서 나름 몸의 통증이나 컨디션에 민감해졌다고 생각했었다. 로스쿨 다닐 때도 공부보다 컨디션 유지에 신경을 훠어얼씬 더 많이 쓸 정도로 통증과 체력 이슈에 민감했다.


그런데, 체력도 어느정도 회복하고 변호사가 된 후 일이 바쁘다보니 다시 둔감해진 것일까? 조금만 몸이 나빠져도 스트레칭 하고 요가를 찾다가 최근 몇 년 건강관리에 소홀했다. 출산 당일에도 진진통을 가진통인 줄 알고 한숨 자고 김밥까지 먹고 병원에 갔다가 "왜 이제서야 오셨어요?"라는 소리를 들었고 우리 아기는 뱃속에서 너무 힘들어서 태변을 먹고 심박수가 떨어지는 상태에 놓였었다. 미련할 정도로 둔감한 면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우리 애기 미안해...)


그리고 요즘, 일상생활 가능한 수준으로 체력을 회복하는 데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었는데, 또다시 잃을 순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육아 시간을 줄이긴 어려우니 일하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이것인 즉슨 반드시 마음의 불안을 잠재우며 운동과 쉼에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균형.. 올 연말의 개인적 화두는 균형이다. 일과 쉼의 균형, 욕심과 내려놓음 사이의 균형, 나에 대한 투자와 가족에 대한 헌신 사이의 균형. 어쩌면 2024년 한 해의 화두가 될지도-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엔 스치는 생각이 많았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몰라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간단하게라도 정리하고 올해를 마무리해야 내년을 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기에 두서 없이 끄적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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