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현대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인생의 순서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 경제적 독립, 자아 실현이라는 가치가 강조되며, 결혼과 출산은 삶을 제약하는 요소이자 ‘선택적 부담’이 되어버렸다. 특히 한국 사회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반등시킬 방안은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 이 글은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의 사회 진출을 억제해야 한다’는 극단적이고 위험한 상상을 던지며, 그만큼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 더 이상 희생하지 않는 개인들
오늘날의 청년 세대는 예전과 다른 경제적·사회적 조건에서 살아간다. 과거와 달리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으며, 여성들은 군 복무 없이 조기에 경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이는 남성보다 자산 축적 측면에서 오히려 유리한 지점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산이 결혼이나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SNS와 여가 산업의 발달, 소비 중심의 문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가족을 위한 희생’보다는 ‘나의 만족과 안정’을 우선순위에 둔다. 이는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여건과 사회적 구조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2. 양극화와 생존 본능의 충돌
한편으로는 자산 양극화, 부동산 가격 폭등, 실질 임금 감소, 고물가 등의 요인이 청년 세대를 경제적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고용 시장도 불안정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출산’을 계획하기란 어렵다. 인간도 결국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다. 출산이 생존을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자연스레 출산은 포기된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삶’은 이제 많은 이들에게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상상일 뿐이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1인 가구, 반려동물, 비혼주의, 비출산주의 같은 새로운 생존 전략들이다.
3. 극단적 상상: 여성의 사회 진출을 억제해야 한다?
이 글이 제기하는 극단적인 상상은 다음과 같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법과 제도로 억제하고,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면, 여성은 결혼할 수밖에 없고, 출산율은 다시 오를 것이다.’
이 상상은 절대로 옳거나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과거 조선시대나 산업화 시기의 가부장적 구조를 떠올리게 하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침해하는 반사회적 발상이다. 그러나 이런 비윤리적인 생각조차 떠오르게 만드는 현실의 절망이 문제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출산율이라는 지표 하나로도 거대한 구조적 붕괴를 반영하고 있다.
4. 답이 없는 시대에 필요한 인식 전환
이제는 단순히 금전적 지원이나 육아 수당만으로는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없다. 사회 전체가 개인의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해야 한다. 출산을 ‘국가를 위한 희생’이 아닌, ‘개인의 삶에 있어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바꾸기 위한 문화적, 구조적, 인식적 혁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누구도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사회는 계속될 것이고, ‘출산율을 위해 여성의 사회화를 억제해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 상상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지도 모른다. 그 순간, 우리는 진짜로 파국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마무리
이 글의 목적은 여성의 사회화를 부정하거나 남녀 역할을 고정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재의 출산율 위기와 사회 구조의 충돌이 얼마나 깊은지를 극단적 상상을 통해 고발하고자 했다. 출산율 반등을 원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상과 접근이 필요하다. 생존을 위한 선택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풍요로움을 확장하는 선택으로서의 출산이 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