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가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by 박유진

아웃사이더를 검색해본다. 사전적 의미로 '사회의 기성 틀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자칭 타칭 아웃사이더인 나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는 사회의 기성 틀에서 벗어나기는커녕 구시대적인 모든 것들을 착실히 답습하고, 독자적인 사상 따위의 거룩한 것들은 애초에 몸과 정신 그 어디에도 지녀본 적이 없는 레디메이드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스크롤을 내려 좀 더 읽어보니 아웃사이더가 현대적 의미로서 재정의되어 사용된 것은 1956년 콜린 윌슨이라는 영국 작가가 '아웃사이더'라는 평론집을 출간한 것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그즈음부터 아웃사이더는 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다는 말인데.... 65년 전에도 아웃사이더가 있었다니. 요즘 같은 세상에 도무지 경쟁력이 없어 보이는 아웃사이더 종족의 일원으로서, 아웃사이더가 나름의 역사를 가졌다는 사실은 반가울 일이다.


새끼 강아지가 사회화 시기를 잘못 보내면 자신의 가족 외의 생명체들을 낯설어하고 무서워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 집 개딸이 좋은 예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개딸은 7살 어른 강아지였을 때 우리 집으로 왔다. 우리 집 강아지는 산책을 나가기만 하면 다른 강아지들을 향해 으르렁거린다.


처음에는 동족을 혐오하는 이례적인 타입인가 했는데 아장아장 걷는 아기에서부터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까지 경계하며 으르렁대는 걸 보면, 모든 생명을 지닌 존재들로부터 골고루 평등하게 낯섦과 공포를 느끼는 모양이다. 도대체 얘가 산책만 나오면 왜 이러나 싶어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사회화 시기에 다른 강아지나 여러 사람들을 못 만난 탓이라고 한다.


나도 생의 어느 시기에 사회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그저 인간이어서 철저하게 속내를 숨기고 타인에게 짖거나 으르렁대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나와 개딸 모두 사회화가 덜 된 동물이라는 점에서 우리 집 개딸에게 동지애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내가 직장에 다니고 돈을 번다. 나 같은 아싸는 직장에 다닌다고 해도 회사 사람들로부터 쉽게 소외당하고, 요직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이나 승진을 놓고 벌이는 다툼 같은 일들에서도 쉽게 배제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어느 정도는 그렇다. 나는 회사에 친하다고 할 수 있는 동료가 거의 없고, 선후배는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다. 사내 동호회 모임에 열정적으로 참가하거나 퇴근 후 회사 사람들과 술을 마시러 가거나 하지도 않는다.


승진도 그냥저냥. 요직은커녕 벗어날 수 없는 막내 생활의 굴레에 갇혀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햄스터 한 마리다. 도돌이표에 갇힌 음표처럼 집-회사, 집-회사를 반복하며 단조로운 보통날들을 산다.


24살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2곳의 회사에 다녔고, 다시 새로운 직장에서 근무한 지 4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아직 아싸로써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은 전혀 터득하지 못했다. 사실 딱히 뾰족한 수가 없다. 답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내가 오래도록 믿어온 명제였고, 설사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한들 인싸의 삶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육체적 정신적 체력이 내게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더군다나 아웃사이더 성향이 개선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내 안의 찐따들을 토닥이고 달래 가며 함께 잘 살아가고픈 심정이다.


매일 8시간 꼬박 너무 많은 사람들과 말들의 포화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다 완전히 방전된 채 집으로 돌아오지만, 닫힌 내 방에서 스스를 다독이며 내일의 일상으로 복귀할 힘을 쌓아두는 일들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내일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색한 후배와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도 체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할 말을 생각해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