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혐오한다.
가령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 쏟아지는 비를 뚫고 찾아간 식당이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았다거나, 다른 사람들의 사정에 의해 퇴근 이후의 내 피 같은 시간들이 낭비되거나 하는 끔찍한 일들은 때때로 나를 미치게 만든다.
나는 철저히 나의 의도 아래 시간을 써야만 하는, 자기 주도 생활이 지나치게 체화된 인간인가 보다. 하지만 어쩌겠나. 워렌 버핏이 아니고, 만수르가 아닌 것을. 밥벌이를 하고 월급을 받아야만 하는 것을.
어느 월요일은 회사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가 보내주는 메일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야근을 필사적으로 하지 않으려 하지만 왕왕 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이다.
퇴근시간이 한참을 넘었는데, 새로고침을 아무리 눌러봐도 메일은 오지 않았다. 메일이 와야 보고서를 만들 수 있고, 보고서를 만들어야 집에 갈 수 있는데.
저녁 아홉 시가 넘어가자 기다림에 지치다 못해 화가 났다. 죄 없는 마우스를 쾅쾅 내려치고 나니 그나마 속이 조금 풀렸다. 다행히(혹은 아쉽게도) 마우스의 왼쪽 이빨이 덜렁거릴 뿐 부서지지는 않았다.
2시간 하고도 20여분을 넘게 기다렸다. 2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들만 차린 식탁에서 철저히 나만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식사라 부를 수 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고, 강아지와 밤 산책을 나갈 수 있고, 좋아하는 소설책을 단 몇 페이지라도 읽을 수 있는 금쪽같은 시간이다.
하늘이 두 쪽 난다 해도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절대적으로 신성한 내 시간을 이따위로 침범당하다니. 오른쪽 가슴 명치끝에서 누군가 연달아 터지는 폭죽을 놓아둔 것 같았다. 분노의 불꽃이 끝도 없이 솟구치며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밤 10시를 넘기지 못하고 책상을 박차고 회사를 나와버렸다. 익숙한 분노와 상황이다. 묘한 기시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학창 시절 책상 위에 앉아 피타고라스 할아버지가 온다고 해도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수학 문제를 앞에 두고 하루 온종일 학교 책상에 꼼짝없이 붙어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야자시간에 매일 지하철 역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일간지를 몰래 읽다가 학주(요새는 학교에서 뭐라 불리는지 모르겠다)에게 걸려 손바닥 몇 대를 맞고 벌을 서면서도 ‘자율학습시간인데 왜 자율적 학습을 하지 말란 거지?’ 생각하며 어이없어하던 2004년의 나.
그리고, 왜 하루 반나절 이상을 모니터 앞에 꼼짝없이 앉아 뜬 장 안의 개처럼 붙들려있어야 하는 것인가를 여전히 고민하는 지금의 내가 2021년을 산다.
생의 타임라인에서 나는 과연 몇 칸이나 나아간 것일까. 그 나아감의 방향은 성장일까 퇴보일까.
무게와 상황이 다를 뿐 본질만은 같은 고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나. 이 반복을 끝낼 수 있는 날이 올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마저 포용할 수 있는 근사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세상의 모든 월요일을 거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