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끝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남편을 쓰다

by 박유진

남편은 무던하고 안정적인 사람이다. 세상 사소한 일까지 하나하나 들춰가며 스트레스를 사서 받는, 예민함의 절정을 치닫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 웬만해서는 남편을 열 받게 할 수 없다. 설사 그런 일이 있더라도 그 빡침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2~3시간 남짓.


사실 우리가 함께 하는 24시간 중 한두 시간의 일들만 곱씹어봐도 남편이 얼마나 무던한지 알 수 있다. 어쩌다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게 된 똥파리 한 마리에도 몸서리를 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똥파리의 윙윙 거림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남편은 똥파리가 남편의 콧등에라도 내려앉아 진짜 똥이라도 싸야 놀랄 만한 사람이다.


남편은 느리고 잔잔하다. 생각과 감정의 변화가 잦지 않고 대개 일정하다. 시끄러운 장소와 공간을 선호하지 않고, 외출과 약속이 없는 주말을 좋아한다. 반면 나는 남편보다 훨씬 성격이 급하고 행동이 빠른 편인데, 우리 부부는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같을 뿐 그 외 나머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가장 크게 이견을 보이는 부분은 바로 음식에 대한 취향이다. 남편은 고기 요리와 술, 날 것을 좋아하고 외식과 배달음식을 좋아한다. 나는 고기보다는 야채를 선호하고, 알코올 쓰레기라는 별명에 걸맞은 소박한 주량을 지녔으며, 배달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집밥을 사랑한다.


또 남편은 피자와 햄버거, 파스타를 좋아하는 반면, 나는 된장찌개와 비빔밥, 각종 나물 반찬과 잡곡밥을 즐기는 신토불이의 화신이다. 우리 집의 요리는 내가 맡고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 집 식탁에 주로 오르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한식이다. 대신 햄 구이, 냉동고기만두,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 등의 메뉴들을 사이드로 끼워 넣는 선에서 우리 부부는 순순히 메뉴 합의를 본다.


책 취향도 다르다. 우리는 주말마다 중고서점이나 도서관을 꼭 들르고는 하는데 중고서점 입구에 들어선 우리는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각자의 취향에 따라 움직인다. 남편은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 유명 추리소설 작가들의 책을 모아 놓은 섹터로, 한국 소설과 에세이, 고전 등을 좋아하는 나는 서점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헤집고 다닌다.


좋아하는 작가가 신간을 냈는지, 이번에는 어떤 신인작가가 어떤 작품으로 등단했는지 등을 살펴보고 고른 책들이 오늘의 예산을 초과하는 지를 열심히 셈하고 있노라면, 남편이 저 멀리서 고른 책들을 손에 쥐고 타박타박 걸어온다. 남편이 골라 온 책들은 역시나 내 취향과는 멀다. 사실 남편도 내가 고른 책을 좋아한 적이 거의 없다.


부부는 한 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남편과 나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다. 29년과 30년을 서로가 알지 못하는 모습들로 살아온 우리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어느 가을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관계의 영원을 약속하고 서로에 대한 신의와 사랑을 맹세한 그 순간으로부터 비로소 부부가 되었다. 그렇게 부부가 된 우리는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 다른 점들의 목록을 차곡차곡 갱신해가고 있다.


먼 훗날 어떤 사람과 결혼하게 될 것인가를 주제로 언니와 진지하게 고민하던 날이 있었다. 언니나 나나 당시 남자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상상은 자유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답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언니는 한숨을 쉬며 "내 남편이 될 인간은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걸어오고 있나 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우스웠던지 한참 웃었었다.


의외로 언니의 그 말은 내게 오랫동안 남았는데, 이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 사람은 어디서부터 걸어온 사람일까'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 내 옆의 남편을 두고 가끔 생각하게 된다. 남편은 어디에서부터 걸어온 사람일까. 사실 출발점이나 경로 따위는 중요치 않다. 그저 분명한 것은 남편이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는 것, 그뿐이다.


결혼은 관계를 정의하는 하나의 형식일 뿐이어서, 결혼 이후에도 삶은 지속된다. 결혼 이전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날들이. 꾸벅꾸벅 출근하고, 끼니를 때우고, 건강을 염려하며 긴장과 불안을 기본값으로 흘러가는 나의 일상 또한 결혼 전과 달라진 것이 크게 없다. 그러나 세상에 머무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질 삶과 죽음의 찰나에 서로가 동행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결혼의 이유는 충분하다.


오늘은 남편이 주말을 맞아 화장실 청소를 했다. 안방 화장실 배수구에 실뱀처럼 똬리 틀고 있는 새까만 머리카락 뭉치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는 나와, 그런 나를 보고 씩 웃으며 조용히 휴지를 집어 들고는 그것을 묵묵히 치우는 남편.


우리는 늘 그래 왔듯이 남은 날들을 다르게 살아갈 것이다. 남편은 끝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스스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누구보다 서로에게 가까운 타인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