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대충, 귀찮아
평소 일상에서 뱉는 말들을 데이터화 한다면, 각각 1~3순위에 오를 단어들을 나열해본다. 물론 언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 생활의 단면들을 압축한 말들이기도 하니까. 나는 실제로도 그냥 산다. 대충, 귀찮아하며 산다.
몇몇 지인들의 평가에 의하면 나는 큰 결정들을 너무 대충 내리는 편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진로나 취업, 결혼과 같은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중요한 결정들을 큰 고민 없이, 무 자르듯 턱턱 해버렸다.
결혼을 준비하던 때도 그랬다. 남편과 웨딩홀 두 곳을 대충 둘러보고 결정했다. 웨딩드레스에 대한 환상 같은 것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드레스 선택도 단번에 오케이. 신혼가전은 남편과 데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들린 근처 하이마트에서 한큐에 해결했다. 청첩장도 무조건 접기 쉬운 걸로.
신혼집도 하루 만에 골랐다. (어차피 두 곳 밖에 안 가봐서 선택지도 많지 않았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의 보정이 늦어지자, 대충 휴대폰 카메라 어플에서 필터를 씌운 사진들로 모바일 청첩장을 만들었다. 평소 나의 실체를 잘 알고 있던 친구들은 쟤가 저러다가 설마 결혼까지 대충 할까 싶었을 것이다.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친구들은 필터로 대충 버무린 사진으로 만든 모바일 청첩장을 받아 들고서야 비로소 잊고 있던 나의 무신경함과 게으름을 떠올렸을 것이다. 친구들은 한바탕 웃으며 야유의 박수를 쳐줬다.
사기업 취업준비를 접고 공시를 시작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기소개서와 인적성 검사 문제집, 면접 자료 들을 다 분리수거해버리고 다음 날 공시의 세계에서 제일 수강생이 많다는 사이트의 인강을 등록했다. 결정하는 데 딱 하루가 걸렸다.
직렬도 대충 골랐다. 타 직렬들에 비해 점수가 너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딱 평균점의 직렬을 골랐다. 직무에 대한 서치는 전혀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취업준비에 시달린 탓인지 진로 고민 자체가 귀찮았다. 직장은 내 적성 따위 고려하지 않다는 걸 일찌감찌 깨달은 탓이기도 했지만, 실은 게으름이 더 컸던 것이다.
귀찮음과 게으름이 본격적으로 심화된 시점은 24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주말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는 몇 걸음이 귀찮아 볼 일을 참았다가 한 번에 해결하거나, 가방 안에 종이 영수증들을 처박아 두고 몇 달간 넣고 다녔다가 영수증의 잉크가 다 지워져 없어질 때쯤 꺼내 버리는 일은 예사였다. 침대와 서랍 모서리로 떨어져 깊숙이 끼인 책이나 리모컨 같은 것들은 필요해질 때가 될 때까지 웬만해서는 꺼내지 않았다.
결혼 후 내 게으름의 실체를 목도한 남편은 조금 놀란 듯했다. 이제 결혼도 했겠다, 새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2021년의 목표를 '의욕적으로 살기'로 정하고 몇 가지 계획을 실행했다.
의욕적인 삶을 위한 나의 첫 도전은 미라클 모닝 실천하기였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보통 새벽 5~6시에는 일어나던데, 그건 도저히 무리였다. 내 경우에는 30분만 일찍 일어나도 미라클이었다. 2주 간 30분 일찍 일어나 책을 몇 장 읽거나 아침을 챙겨 먹은 후 출근했다.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출근하지 않는 모닝은 미라클이 될 수 있으나, 출근하는 모닝은 그냥 헬이라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헬스클럽에 등록해 운동을 배워봤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싸 답게 소심한 스쿼트를 반복하던 나는, 다부진 근육질을 드러내며 무거운 운동기구들로 열심히 득근하는 울끈이 불끈이들의 기세에 짓눌려 점점 헬스장 구석으로 밀려났다. 사람이 없는 새벽시간을 이용해볼까 고민했으나 출근만으로도 충분히 귀찮았기에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운동도 그만뒀다.
몇 번의 몸부림 끝에 결국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왔다. 거창한 이유 없이 그냥, 대충, 귀찮아하며 사는 나의 날들로 복귀했다.
사람들은 너무 부지런히 많은 것들을 이루며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성장도 발전도 없이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현실과 타협하는 것,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는 것은 실패한 자들의 변명이라는 말은 익숙한 문장이다.
그러나 가끔은 엉망인 채 대충 살아도 큰일은 나지 않았다. 기껏 두 곳을 둘러보고 결정한 결혼식장은 썩 괜찮았고, 하이마트에서 고민 없이 구입한 가전제품들도 아직 튼튼하다. 모바일 청첩장은 비록 사진의 퀄리티가 형편없긴 했지만 많은 지인들에게 웃음과 이야깃거리를 안겨주었고, 이젠 생각하면 그저 웃긴 추억일 뿐이다. 적성과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점수에 맞춰 들어간 직장도 뭐 그럭저럭 다닐 만은 하다.
아침이 좀 미라클 하지 않으면 어떠한가. 성장과 자기 계발이 없이, 아무런 나아감 없이 머물러 있는 삶인들 또 어떠한가. 이런들 저런들 우리의 생은 대충, 엉망인 그 자체로도 이미 완벽하다.
* 참고로 배경 사진은 제가 털을 잘못 밀어 빡빡이 된 저희 집 개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