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같은 여우가 되고 싶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속으로는 조용히 상대의 마음을 읽고, 결국엔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천천히, 교묘하게 끌고 가고 싶다. 손해 보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이용해 판을 움직이는 그런 여우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우짓을 끝까지 지켜볼 수 없는 인간이다. 나의 그런 모습, 그 순간이 부끄러워 차마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할 거다. 그래서 결국 오늘도, 여우가 아닌 곰이 되기로 한다. 뱀처럼 스르르 빠져나가는 대신 둔하고 굼뜬 척 상대의 말에, 행동에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한 채 당하는 쪽을 택한다.
영악한 인간이 되고 싶다.
이득을 위해서라면, 자기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생명체가 되고 싶다. 상대의 마음이나 안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나만이 이길 전쟁을 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눈앞에 선 사람을 너무 잘 본다. 그의 마음, 온기, 그녀의 눈빛,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너무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그래서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된 것처럼
그 감정에 붙잡혀 움직이지 못한다.
나는 결국 여우가 될 수 없는 곰이다.
그런 내가 답답하고, 그런 내가 안타깝지만 나는 또다시 굼뜨게, 느리게 반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결국 나를 위한 길이기도 하니까.
이 모순 안에서 나는 끝없이 괴로워한다.
언젠가, 여우가 될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마늘을 더 먹어야 여우가 될 수 있는 걸까.
얼마나 더 매워야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뀌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