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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27. 2017

그래도 전시를 준비합니다.

뫼비우스 전시회를 마치며, 짧은 생각



왜 전시를 하는 건가요.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날, 약 삼 주간 진행되었던 합동전이 마무리되었다. [뫼비우스]라는 프로젝트 명 아래, 열한 명이 모여 만들어낸 전시였다. 전시의 주제는 죽음. 큰 타이틀 아래 회화, 포토, 콜라주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작품을 만들어냈다.

나는 네 점의 그림으로 참가했다. 주제는 '강요된 죽음.' 제국주의의 확산으로 멸종되어야 했던 동물들과 소수민족들의 이야기를 한 캔버스에 담아 보았다. 작품의 색조는 밝은 톤을 유지하도록 했다. 슬픈 이야기를 슬픈 그대로 할 용기가 없었다.



전시회를 시작하고 며칠 지났을 때, 전시장을 구경하고 왔다며 한 지인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그거 왜 하는 거지? 돈 받고 하는 건가? 뭐 수상전 그런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 생각에 '제대로 된 전시회'에는 그런 조건들이 붙는 모양이었다. 공신력 있는 기업이나 단체에서 주최를 하고, 작품 아래에는 제법 긴 작가의 경력이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전시회가 좋은 것인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테니깐. 그렇지만 자신의 기준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무례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든 알아야 할 일이다.

그 질문이 도화선이 되어서, 한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전시회는 왜 하는 걸까.

서울에서만 수많은 전시회들이 열린다. 포털 사이트에 에 등록되어 홍보되는 전시회들만 이백여 개 가까이 되니, 등록되지 않은 전시회들의 수까지 합치면 그 배는 되지 않을까 싶다. 

전시회를 준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전시장을 알아보아야 하고, 작품 배치부터 작가 노트와 포스터 준비까지 해야 할 일이 한가득이다. 기업이나 단체에서 주관해 작품만 제출하면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전업 작가라 할지라도 살짝 버거울 수 있는 양의 일들이 몰려 들어온다. 하물며 생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말해 무엇할까. 퇴근 후 새벽과 주말을 온전히 받치지 않으면 절대 마감을 맞출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전시회가 수입원이 되느냐. 아니다.  전시회를 통해 수입을 낼 수 있는 작가는 소수일 것이다. 관련 상품들이 잘 팔린다 해도, 작가의 인건비까지 모두 계산해 보면 사실상 수입은 적다. 작품이 팔리지 않는 이상, 전시회를 통해 큰 수익을 얻는 것은 힘들다. 



전시회를 연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다. 전시장에는 누구든 있어야 한다. 작품 해설을 위해 있어야 할 때도 있고, 작품 훼손을 염려해서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근래에는 전시장을 대여할 돈이 부족한 젊은 창작자들이 갤러리 카페를 이용해 전시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 셰어를 통한 전시는, 사실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카페에 오고 가는 사람들은 전시회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아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작품이라는 인지를 못하고 마구 다룰 수도 있다. 실제로 부주의한 취급 때문에 작품이 훼손된 케이스도 종종 있었다.



요약하면, 전시회는 돈 안되고 시간만 잡아먹는다. 예쁘지만 말썽만 잔뜩 부리는 아이 같은 존재랄까나.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준비한다. 

그 이유는 모두 다를 것이다. 자기 홍보를 위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순수하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렇다면 나는 왜 전시회를 하는 걸까. 이제껏 나는 세 번의 전시회에 참여했었다. 두 번의 사진전, 그리고 이 뫼비우스 전. 규모로 따지면 처음 참여했던 사진전이 가장 컸었다.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작품 전시가 진행되었다. 주최 측이 모든 일을 해결해 주었고, 나는 작품만 제출하면 되었다. 중국에서 전시를 할 때에는 언론에서 취재도 왔다.

그렇지만 가장 재미없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전시장, 내 의견이 들어가지 않은 작품 배치. 어색하게 웃고 있으면서 왜 내가 여기 있는 걸까, 되물었다.

두 번째 전시회는 사진을 함께 한 사람들끼리 준비했었다. 재미있었다. 이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알았다. 나는 사람들하고 같이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 그 자체를 좋아했다.

그래서 세 번째, 뫼비우스 전시회에 참여했다. 이 전시회에 참여 의사를 밝히고 사흘 후인가, 개인전 제의가 왔었다. 브런치에 올리고 있는 그림일기를 인스타그램에도 올리고 있었는데, 그 그림을 전시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시회 두 개를 동시에 준비할 수는 없었다. 생업이 있으니깐. 내가 전시 준비에 쓸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아무리 많아도 두 시간 남짓이었다. 

그래서 개인전 제의를 거절했다.



누군가가 들으면 바보 같다고 할지도 모른다. 단체전보다는 개인전이 낫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글쎄, 그것 역시 기준이 다른 것이라 대답하고 싶다.

현실적으로는 득 보다 실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이런 기회가 온다면 전시회를 준비할 것이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으니깐.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게 되는 풍경들이 있으니깐.


모두 각자의 이유로 쓰고, 그리고, 찍는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각자의 이유로 그것들을 타인에게 선보인다.

그 생생함이 고스란히 걸린다. 

그것이 전시회에 가는 이유이고, 전시회를 준비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




유진[posong] https://www.facebook.com/uijin.p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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