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상자에 넣어, 악몽의 왕에게: 크리스마스의 악몽

12월의 테마: 크리스마스 Christmas

by 유진


크리스마스의 악몽 <Tim Burton's 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 1993>











가끔 생각하게 된다.

내 자리는 이곳이 맞는 걸까, 하고.

어느 해의 12월, 갑작스럽게 찾아온 우울감에 당황했었다. 대체 왜 우울한 걸까, 온갖 이유를 손꼽아 봤다. 우울한 것을 잊어 보려고 별별 것도 다 해 보았다. 좋아하는 것을 보러 가고, 예쁜 것을 사 늘어놓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가, 혼자 있었다가, 낯선 사람들을 만나 보기도 했다.

무엇을 해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적어보았다. 어느 때 심하게 우울해지는지.

대부분은 일을 마치고 난 뒤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에도 웃어야 할 때, 피드백을 가장한 무례함에도 고개를 끄덕여야 할 때, 타성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순간 스스로에게 혐오를 느끼는 순간들.

그 순간들을 꽉꽉 씹어 삼키고 난 후에는 언제나 우울해졌다.

그 후에도 몇 년에 한 번씩, 비슷한 불안과 우울을 겪어내었다. 대부분 12월이었다.

12월. 한 해의 마지막.

지금 있는 곳이 내 자리가 아니라면, 12월이 끝나기 전 정리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 새해 첫 날을 시원한 기분으로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깐. 내 자리이긴 하지만, 좀 더 나은 무언가를 찾고 싶어 질 때도 마찬가지다.

12월이 가기 전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이 우울함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우울과 뒤섞여 새까맣게 변해간다.

그럴 때면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봤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 1993년에 개봉한 이 영화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 요약하자면 ‘크리스마스를 부러워한 핼러윈의 대왕’ 쯤 되려나.

잭이 크리스마스를 부러워한 이유.

자신이 해 온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울 때문에.

핼러윈 마을의 대표, ‘악몽의 왕’. 매년 반복되는 사람들의 공포.

어쩐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잭’ 이 악당처럼 표현되기도 하는데, 사실 잭은 악당이 아니다. 잭이 맡고 있는 명절은 ‘핼러윈’이다. 다른 사람을 놀리고 골탕 먹이는 것이 핼러윈 마을 사람들의 본업이다. 잭이 산타를 납치한 것은 정중한 초대였으며, 선물상자 안에 해골 머리를 넣은 것 역시 정말로 상대방이 기뻐할 거라 생각해서였다. 잭이 잘못한 것이라면 타인의 기호가 자신과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랄까. 단지 그 이유로 ‘악당’이라 불린다면, 우리 중에 악당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해진다. 게다가 잭은 자기 실수의 대가를 톡톡히 받는다. 잭이 계획한 크리스마스는 실패한다. 잭은 무너진 천사 상에 안겨 외친다.

그래도 나는, 꿈꾸어 봤고 노력했으니 괜찮다고.

그리고 잭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핼러윈 마을, 악몽의 왕으로.

이 영화에서, 잭이 핼러윈 마을의 왕이 된 것은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그 일을 맡도록 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잭의 우울함이 무척이나 공감이 되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상상을 했다.

까맣게 변하기 직전의 우울을 꾸역꾸역 끄집어내어 선물 상자에 담는 상상.

악몽의 왕이 이 선물을 해치워 줄 거야.

잭에게 내 우울을 떠넘긴다. 떠넘기며 바란다.

12월이 끝나기를. (*)

매거진의 이전글축제가 즐거울 수 있는 건 : 매직 캘린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