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테마 : 세계 여성의 날
소녀와 여자(Where am I? Beyond Girl and Woman, 2015)
14세 소녀 아니타. 여성 할례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드디어 딸이 여자가 되었다고 기뻐한다. 이젠 딸을 시집보낼 수 있다고. 할례를 받기 전의 딸은 소녀라, 죽어도 무덤에 묻힐 수 없었지만 이젠 여자가 되었으니 묻힐 수 있다고.
아니타의 아버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타가 할례를 받다가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출혈과 요실금 등의 부작용에 시달려야 하며, 첫 성관계를 할 때에 봉합 부위를 다시 찢어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아니타가 출산을 하게 될 때에, 사망률이 세 배로 높아질 것이라는 것을. 봉합 부위가 너무 좁아 아이가 제대로 태어나지 못하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아니타가 정말로 여성 할례를 받은 것을 기꺼워하는지 아닌지조차도.
그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타의 아버지가 아니타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하루빨리 딸을 시집보내 지참금으로 소를 받을 생각만 하고 있다거나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마을의 전통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여성 할례를 받지 않으면 겪을 수 있는 일.
마을 모임 때 정식 자리에 앉을 수 없고, 구석 바닥에 앉아야 한다. 마을의 결정에 참여할 수 없고, 아이를 낳아도 육아에 대해 상의할 수 없다. 남편과 나란히 걸을 수 없고, 술을 마실 수 없고, 집안 경제에 대해 무엇도 이야기할 수 없다. 할례를 받지 않은 여자와 결혼한 남자는 반푼이 취급을 받는다. ‘결함이 있는’ 여자와 결혼했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할례를 받지 않은 여자는 여자가 아닌 ‘소녀’ 일 뿐이니깐.
영화 ‘소녀와 여자’는 여성 할례(Female Genital Mutilation)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12살에서 13살 나이의 소녀들이 겪는 잔혹한 성인식. 그 전통이 ‘전통’ 이란 이름으로, 왜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현실보다 잔혹한 상상은 없다고.
전통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것.
허구의 우월감과 관습이 만들어놓은 권력.
그들은 생각하지 않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여성 할례로 고통받는 이들.
그들이 소녀이기 이전에, 여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