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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18. 2019

읽는 사람을 만나면 : 만약 국제도서전에 가신다면

늦은 쇼케이스 후기. 안전가옥 국제도서전 참가 공지



읽는 것과 쓰는 것.

기본적으로 나는 읽는 행위를 좋아한다. 내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  침대에 드러누워, 옆에 책을 쌓아두고 읽는 것이다.

책의, 이야기의 이상하고도 좋은 점 중 하나는 착각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내 옆에 놓인 책은, 나만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책을 읽는, 이야기를 소비하는 시간 동안 그것은 오직 나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이 된다. 읽는 행위는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고, 자신의 내부로 오롯이 에너지를 쏟아 넣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이지 싶다.

그러니깐 읽는 사람은, 독서가는 한 장씩 자신의 안을 차곡히 쌓아 올려가는 기술자들인 셈이다.

분야는 달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전부 프로다. 자신의 안을 쌓아 올릴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니깐.



그렇기에 읽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자신의 안이 견고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만큼의 안정감을 내게 준다.

그 안정감에는 동료의식도 있다. 어디서든 책을 읽고 있어도, 내 눈 앞에 선 사람은 그 모습을 비웃지 않을 거라는 것. 내가 갑자기 무언가를 미친 듯 메모하기 시작해도 이상하게 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 책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것을 이해해 줄 거라는 것. 내 멋대로 느끼는 이상한 동료의식. 그렇지만 읽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껴보지 않았을까. ‘읽는 행위’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

그런 반응이 아주 작은 가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반응을 마주치면 적당히 웃어넘길 수 있게 된 후에도, 가시는 발아래 콕 박혀서 가끔 나를 아프게 한다.




안전가옥의 두 번째 앤솔로지, [대멸종]에 참여했다.  안전가옥에서 ‘최애전’이 열렸고, 그 장소에서 나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님에도, 이십 분 이상 이야기를 하면 쉬어버리는 성대를 가졌음에도 쇼케이스에 참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함께했다. 읽는 사람들. 읽을 것을 찾아, 쓴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걸음을 옮겨 앉아 있는 사람들. 읽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의 견고한 공기. 가시에 찔린 자국쯤 금세 메워버릴 듯한 그 분위기가 좋았다.

읽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행사라고 하면, 서울 국제 도서전을 빼놓을 수 없을 터이다.

2019년에도 도서전이 열린다. 6월 19일 화요일부터 23일까지, 언제나처럼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나는 거의 매년 국제 도서전에 갔는데, 이번에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여행 중이니깐. 한 달 간의 여행.

일반 직장인이 (물론 시간 유동성이 있긴 하지만) 한 달이란 시간을 여행에 쏟아붓는다는 건, 상당한 기회비용을 대가로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국제 도서전에 갈 수 없게 된 건 ‘정신적인 측면의 기회비용’이었다. 내가 매년 도서전을 갔던 이유는 지극히 단순한데, 거기서 책을 보고, 구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였다. 그것도 온갖 분야의 책을 말이다. 그건 뭐랄까, 거대한 풍경화 하나를 여러 분야의 장인들이 컬래버레이션으로 만들어내는 느낌을 주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대멸종]도 국제 도서전에 참가하는데 갈 수 없게 되다니.

나도 붓터치 한 자국 더한 책이, 내가 좋아하는 행사에 참가하는 풍경을 볼 수 없게 되다니.

그건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 될 터였다.




국제 도서전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같은 비판을 받고 있음을 안다. 나 역시 관람객으로 갈 때마다 비슷한 불만을 느끼기도 했다. 매년 비슷한 행사, 비슷한 부스들, 호화롭게 꾸며졌을 뿐 일반 관람객에게는 큰 임팩트 없던 주빈국 부스.

그럼에도 내가 국도전을 찾았던 제일 큰 이유. 국도전이 없어지는 건 싫으니깐.

읽는 사람들이, 한 장소에 그렇게 많이 모이는 행사는 많지 않다. 예전보다 많아졌다고 해도 그렇다. 책 관련 행사가 하나라도 더 늘어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역사가 있는 국도전이 없어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그리고 다음 이유. 조금씩 국도전이 비판을 수용하고 변화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니깐. 참가 부스의 장르 다양화도 그중 하나이다. 그리고 ‘안전가옥’도 그 변화에 한몫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안전가옥’은 이번 국제 도서전에서 안전가옥의 발행 도서 중 첫 장편소설을 선보인다. 제목만으로도 이미 재미있는 ‘뉴서울 파크 젤리 장수 대학살’ 이 그것이다.



물론 이전에 발행했던 앤솔로지, [냉면]과 [대멸종]도 함께한다.

그러니 혹시 국제 도서전에 가신다면, 안전가옥 부스를 찾아가 보시기를.

쓰는 사람들의 세이프 하우스, 안전가옥. 모든 이야기가 안전하게 위치할 수 있기를 꿈꾸는 그곳.

읽는 사람들의 견고함은 쓰는 사람들의 힘이 된다. 그 자체로 세이프 하우스가, 안전가옥이 된다. 그러니 분명, 즐거울 수 있을 터이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결국, 책과 이야기가 좋아 그곳에 있는 것일 테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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