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을 들고 있던 아이들: 올리버

6월의 테마 : 세계 아동노동 반대의 날

by 유진


올리버 (OLIVER, 1968)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의 런던은 거대한 공장이었다. 이전까지 전문가의 기술로 행하여지던 수많은 분야들이 기계로 대체되었다. 공장주는 숙련된 남성 노동자를 여성과 아이들로 대처해, 임금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1845)』에 의하면, 1839년 공장 노동자 42만 명 가운데 절반이 18세 이하였다. 기계로 움직이는 사회는 ‘성인 남성’의 임금으로 움직이던 전통적인 가족을 해체했다.

물론 산업혁명 이전에도 아동 노동은 존재했다. 어린이가 ‘보호받아야 할 대상’ 임을 인식하게 된 역사는 길지 않다. 근대 이전에는 연령보다 계급이 우선이었고, 생산력이 부족한 사회에서 하층계급은 온 가족이 일에 나서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계급이 낮을수록, 아이는 노동력으로 치환되어 취급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아동노동은 그 결이 달랐다. 그전까지는 가족 단위로 움직이던 노동이 ‘산업’이라는 제도화된 시스템 속으로 편입된 것이었다. 해체된 가족에서 내몰린 아이들은 고아원으로, 범죄 조직으로 흡수되어갔다. 혼자서는 잘 곳을 얻을 수도, 거리의 폭력에서 몸을 지킬 수도 없는 아이들은 그러한 공동체라도 ‘대체 가족’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올리버]. 1968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산업혁명 당시 아동 노동의 상황을 너무나 유쾌하게 그려낸다. 영화의 첫 장면, 시작은 고아원이다. 소년들은 빈 밥그릇을 들고 흥겹게, 음식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올리버는 죽 한 그릇을 더 달라고 말하고, 고아원 원장은 올리버를 건방지다고 내쫓는다. 그때부터 올리버는 ‘진짜 가족’을 만나기까지, 올리버의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공동체에 시달리게 된다.

이 영화의 결말은 이미 유명하다. 진짜 가족을 만나 행복해지는 고아 소년 올리버. 미소 짓는 올리버의 얼굴 위로, 밥그릇을 들고 있던 수많은 다른 소년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진짜 가족을 찾지 못한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통계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노동에 시달린 아동들의 평균 수명은 17세였다. 당시의 평균 수명과 비교해도 절반 수준이다. 그러니 밥그릇을 들고 있던 아이들. 그들 중 대부분은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을 터이다. 그러나 [올리버]는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는 해피엔딩이 되지 않으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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