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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24. 2022

그럴싸한 포장은 필요 없어

맛 Une Gourmandise : 슈게트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배가 고민 상담을 해 왔다. 회사 동기에게 양복이 그게 뭐냐는 비웃음을 당했다는 거였다. 후배의 양복은 인터넷에서 산 것이었고, 브랜드 제품은 아니었다. 옷에 별 관심도 없고 4,50만 원짜리 양복을 살 만큼 경제적인 여유도 없는데, 사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거였다.

후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포장지의 나라’를 상상했다.

수없이 많은 겹의 포장지에 싸여 있는 사람들의 나라.

포장지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지만, 일단 멋지고 그럴싸해 보이는 포장지를 손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비교될까 봐 겁이 나니깐. 포장지는 더 화려해지고, 더 요란하게 부스럭거리고,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점점 알 수 없게 되어간다.

권위와 명성. 화려함과 브랜드. 이른바 ‘타이틀’은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뮈리엘 바르베리 Muriel Barbery 의 소설 『맛』의 주인공 ‘장’은 유명한 요리 평론가이다. 장은 자신의 직업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장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음식을 혐오한다. 장이 정의하는 ‘제대로 된 음식’ 이란 이런 것이다. 자연 본연의 재료를 사용하고, 가공 단계가 적으며, 세밀한 조리 과정을 거쳐서, 제대로 보관된 음식들.  때문에 장은 가족과 함께 간 여행에서, 제대로 요리하지 않은 튀김 과자를 맛있다고 말한 딸을 경멸하듯 바라본다. 이렇듯 완벽한 맛에 대한 장의 집착은, 그의 가족과의 관계를 망가뜨려 간다.

보기에는 그럴싸한, 하지만 속은 텅텅 비어있는 관계.

그러한 장이 죽음을 앞둔 순간 절실하게 찾은 ‘단 하나의 맛’은 슈게트였다.

속이 텅 빈 과자, 슈게트 chouquettes. 



슈 아라 크렘(Chou à la crème). 한국에서는 슈크림이라 불리는 과자. 슈게트는 이 슈크림의 동생뻘 되는 과자이다. 이름부터가 슈게트(choux – quette). 작은 슈 라는 뜻으로, 보통 슈크림보다 작게 만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슈크림이 슈 껍질 안에 커스터드 크림을 가득 넣는 것에 비해, 슈게트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대신 슈 껍질 위에 하겔슈가(우박설탕)을 뿌려 달콤함과 감칠맛을 더한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도 등장한 이 과자는, 흔히 ‘프랑스의 전통 과자’로 소개된다. 지금의 슈 반죽의 배합표를 완성한 것이 19세기 프랑스의 전설적인 요리사 앙토넴 카렘  Antonin Careme 이기에,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슈게트의 기원은 16세기로까지 올라단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에서 일했던 요리사 포펠리니 Popelin이 뜨거운 화덕에 밀가루 반죽을 쏟아 만들게 된 pate a chaud라는 한입거리 과자를 시초로 본다. 프랑스 파리에는 이 요리사의 이름을 딴 Popelin이라는 상호의 슈 전문점도 있다.

슈크림이든 슈게트이든, 이 한입거리 간식들은 예전에는 귀족들만이 먹을 수 있는 고급품이었다. 다른 과자들도 그랬지만, 설탕과 버터, 달걀이 듬뿍 사용되는 슈 반죽으로 만들어진 생과자들은 티파티의 진주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젠, 슈 반죽으로 만들어진 과자들은 누구든 쉽게 즐길 수 있다. 그뿐인가. 슈 아라 크렘(Chou à la crème)이 한국의 ‘슈크림’이 되었듯,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변형되어 사랑받고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슈 반죽으로 만들어진 디저트들을 자신의 기호에 따라 골라 먹는다. 그것이 슈퍼에서 파는 500원짜리 슈크림 빵이든, 혹은 제과점에서 파는 것이든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슈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슈게트 하나로 타인의 취향을 판가름하는 사람이 있다면 중세로 돌아가야 할 터이다.





소설 『맛』의 주인공, 장이 최후의 순간에 먹고 싶어 했던 슈게트. 그 역시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슈게트가 아니었다. 장은 속이 텅텅 빈 슈게트가 아닌, 슈퍼에서 파는 슈게트를 원했다. ‘슈게트’라 이름 붙여져 있지만 속에 크림이 잔뜩 들어있는 기성품이다. 보관을 잘못해 질척해진 슈에 대해 혹독한 비평을 쓴 적이 있는 장이 ‘공기가 잘 통하도록 정성스레 포장하는 제과 기술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뭉텅이로 던져 넣어져, 봉지 밑바닥에 들러붙은’ 슈게트를 열망했던 것이다. 숨을 거두기 전, 조카인 폴에게 부탁해 슈퍼마켓에서 파는 슈게트를 사 오라고 부탁하는 장. 그는 말한다.

공장에서 만든, 슈퍼마켓의 슈게트에서 느꼈던 기쁨에 대해. ‘평생에 걸쳐 슈게트에 관해 쓸 수도 있었겠지만, 평생 그것에 반대해서 써 온’ 자신의 삶에 대하여.

장은 좀 더 솔직하게 살 수도 있었다. 그가 포장에 신경 쓰지 않았다면. 고급 식료품점에서 파는 고급품 슈게트가 아닌, 슈퍼마켓에서 파는 공장제 슈가 자신의 취향임을 인정하는 삶을 살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그의 자식들이 그를 ‘최악의 아버지’로 기억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든, 어떤 포장지에 싸여 있든 슈는 맛있다.

어떠한 옷을 입든, 타이틀이 있든 없든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듯 말이다. 

포장지의 나라에서 탈출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슈게트를 베어 물어본다. 바사삭. 

속이 텅 빈 것은, 슈게트만으로 충분하다.(*)









비릿하지만 찬란했다고 기억될 그날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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