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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22. 2022

자존감이 푹 꺼져버린 때에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Big Little Lies : 머핀


컵케이크 틀에 반죽을 넣고 굽는다.

납작했던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 머핀이 완성된다.

둥그런 머핀처럼, 자존감도 부풀어 오를 날이 올 것이다.

오븐 속, 머핀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머핀을 한 입 베어 문다.     

영국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의 주인공 레이첼. 레이첼은 폭식과 자해를 반복해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열여섯 살 소녀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레이첼. 수영장 파티를 위해 수영복을 사러 간다.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입어보던 레이첼의 귀에 화재 경보음이 들려온다. 깜짝 놀라 수영복 차림으로 밖으로 뛰어나간 레이첼. 

레이첼은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비웃는 환상에 시달린다. 모르는 사람까지도 자신을 돼지라고 비웃는 듯한 착각. 그 착각은 파도가 되어 레이첼을 덮치고, 결국 레이첼은 다시 폭식을 하게 된다. 

그런 레이첼에게 상담 의사는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너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자존감 self-esteem.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일컫는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90년대였다.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에 의해 소개된 자존감. 이 용어가 2010년대에 들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문제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문제.

그 때문일까.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을 다룬 수많은 책들이 등장했다. 자존감 로드맵을 그려 보라거나, 매일 거울을 보고 자기 자신을 칭찬해 보라던가 등등. 그런 글들을 보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타인이 해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나라니.

역시 억울하다, 고. 

자존감을 해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고, 그중에는 내부의 요인도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 외부적 요인도 존재한다. 타인의 무분별한 비난, 가족 내에서의 평가, 또래와의 비교 등.

언어폭력도 그중 하나이다.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진. 미혼모로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진은 머핀을 굽는다. 모두가 진의 머핀을 칭찬하며, 맛있게 먹는다. 단 한 사람, 진만 빼고.

진은 자신이 구운 머핀을 먹지 않는다. 제인은 말랐고, 달고 기름진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으며, 머리를 하나로 바짝 묶고 꾸미지 않는다. 제인은 말한다. 여자가 뚱뚱하고 추하면 아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그것이 자신을 아프게 한다고. 

제인은 폭력의 피해자이다. ‘뚱뚱하고 추하다’는 말은, 제인에게 가해졌던 폭력 중 하나였다. 제인은 그녀에게 가해졌던 육체적인 폭력보다도, 자존감을 상처 낸 언어폭력으로 더욱 깊고 긴 상처를 가지게 된다. 케이크와 초콜릿, 버터를 좋아했던 열아홉 살 여자아이는 머핀조차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을 ‘추하다’ 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된다.

육체적인 폭력만큼, 언어적인 폭력도 폭력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상대를 상처 낸다는 점에서 더 교묘한 폭력이기도 하다. 미국의 의사소통 전문가 퍼트리샤 에반스는 언어폭력을 ‘영혼을 파괴하는 폭력’이라 말한다.

타인의 말이 내 자존감을 상처 내는 칼이 되어 들이밀어질 때.

그 칼을 피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 칼에 베인 상처를 치료할 방법을 몰라, 꽁꽁 싸매고만 있었던 것도 잘못이 아니다.

칼에 베인 쪽은 어디까지나 피해자다. 피해자가 죄책감을 느껴야 할 이유는 없다.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의 진. 진은 머핀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진을 친 여동생처럼 보살펴 주는 매들린의 관심, 진에게 계속해서 호감을 표시하는 톰의 도움, 무엇보다 진에게 일어났던 아픔을, 아픔이라고 인정해 준 사람들의 연대가 그를 도왔다.

사람마다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다르다. 내게는 여행이 그 방법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여행은 시작과 끝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성취감을 경험하기에 더없이 좋다. 또한 일상의 루틴을 벗어나기 때문에, 평범하게 겪는 일들에도 강한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의 사소한 도움이 크게 와닿기도 하고, 자신의 기호에 대해서도 더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타인이 주저앉힌 자존감을, 내 힘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 억울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치료하지 않으면 아픈 것은 나니깐. 그러니 혼자만의 힘으로 치료하려 하지도 말자. 타인의 따뜻한 말과 관심은 좋은 약이 되어 줄 것이다. (*)













경쾌하지만 진지한, 동시에 사랑스러운.

10대의 청춘 그 자체인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1982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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