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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31. 2024

0325-0331 편지 주기(週記)


지난주의 나에게.


다니던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았습니다. 정말로 갑자기. 척추협착증 때문에 일 년 반 정도 도수 치료를 받고 있었거든요. 보통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합니다. 이번에도 예약을 하고, 치료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문자가 띠링 날아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문자의 내용인즉 경영악화로 열흘 뒤에 폐업을 하니 자료가 필요하면 신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일주일 전에 예약을 했을 때만 해도 아무 말이 없었는데?


순간 진지하게 누가 병원 시스템을 해킹한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뻔하고 말도 안 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 가끔 나오잖아요. 장사 안 되는 가게가 라이벌 가게를 질투해서(빠밤) 그런 상상을 하게 되었던 건 이 병원이, 지역에서 꽤나 알려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병원 하나씩 있잖아요. 지역에서 십 년, 이십 년씩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아서 누가 봐도 매출 꽤 높을 것 같은 그런 병원. 이곳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폐업? 경영 악화? 머릿속에 물음표 백개가 마구 떠다니는 상태가 되었더랍니다.


물음표를 간직한 채로 맞이한 치료날. 접수처의 직원들은 "문자 받으셨죠?"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그제야 어 진짜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심지어 병원 출입문에 안내문이 붙어 있는 걸 봤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말입니다. 사람의 말이란 글자보다 확실하게 현실을 인식시켜 주더라고요. 병원을 옮기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부탁드리고, 치료실로 향했습니다. 치료실에 들어선 순간 선생님 왈 "문자 받으셨죠?" 그리고 시작된 치료 중, 드디어 듣게 된  병원 폐업의 진실은(중략)

.... 쓰면 고소당할 것 같아서 도저히 쓸 수 없는 그런 사정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폐업하면서 직원들의 퇴직금을 챙겨주는 사장님 이야기가 왜 훈훈한 건지 이해를 못 했더랍니다.  당연한 건데 왜 훈훈하다는 거지,라고. 하지만 사회를 겪을수록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연한 걸 지키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이른바 '있는 사람' 중에는 타인의 몫까지 몽땅 빼앗아 삼키는 사람이 있다는 걸. 당연한 게 당연한 세상이 되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이젠 병원을 알아봐야 합니다. 또다시 등에 주삿바늘 꽂고 싶진 않으니깐 되도록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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