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의 나에게.
삿포로를 5월 말에 일주일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대체 왜,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대체 왜,라는 말의 의미는 대략 이런 거였을 겁니다. 5월의 삿포로는 볼 게 없잖아. 눈 쌓인 풍경도, 보라색의 라벤더 꽃밭도 없는 어중간한 시기잖아. 게다가 5월의 삿포로는 아직 춥단 말이지. 날씨가 통 종잡을 수도 없고.
주변에서만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라 인터넷의 무수한 여행기조차 '5월의 삿포로는 그다지'라는 한줄평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포스팅의 사진을 본 나도 "음. 별로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꽃밭에 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사진은 아무리 봐도 무 밭 같았거든요.
그래도 갔습니다. 삿포로에.
눈도 라벤더도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여름 전에 휴가를 받고 싶어서 날짜를 맞춘 게 6월 전이었고, 그때에 비성수기인 곳, 적당한 비행기 표값, 그럭저럭 말이 통하는 곳, 그럼에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 이란 요상한 조건을 얼렁뚱땅 끼워 맞추다 보니 그럼 삿포로를 가자 - 는 결론에 이르렀던 거지요. 가서 뭘 할까 하는 계획은 무엇 하나 없었습니다. 그냥 잠시라도 좋으니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고 밤에는 밀린 책을 읽으면서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싶었지요. 그러고 보면 아이스크림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홋카이도는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더라, 그 말이 기억에 녹아들어 있다가 휴식이 필요한 때에 불쑥 떠올랐던 것인지도요.
기대했던 일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도 일어났던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서 지친 날에 불쑥 다디달게 떠오르기를 바라봅니다.
짧게나마 여행기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꺼내먹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