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이었던 나에게.
종종 집 근처 공원에 가곤 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공원입니다. 한쪽에는 운동기구가 놓여 있고 호수가를 따라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열심히 뛰고 있는 그런 공원입니다. 특별히 예쁜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닌, 가끔 벌어지는 동네 노래자랑이 최대의 이벤트인 공원. 가도 별 것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그 반복되는, 평범한 풍경에서 안정감을 찾고 싶을 때입니다.
발밑이 흔들리는 것 같은 불안은 왜 언제 어디서든 덮쳐오는 걸까요.
날씨가 좋았습니다. 원래는 비에이에 가기로 한 날이었지요. 어쨌든 갔으니 남들 다 하는 투어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무밭이라도 보러 가자 하고 버스 투어를 신청해 둔 터였습니다. 하지만 호텔을 나오자마자 날씨가 아깝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삿포로에 와서 칼바람이 불지 않은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런 날에, 버스에 갇혀 이동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라벤더도 아닌 무밭을 보려고! 전화를 걸어 투어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당일 캔슬은 환불 불가.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그때 내게 필요한 건 걷는 것, 그리고 공원이었습니다. 아마도 전날의 불만이 쌓여서, 그리고 그 불만을 쌓고 있는 내가 싫어서 가만히 앉아 그 감정을 털어낼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도리 공원은 스스키노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폭은 넓지 않지만 꽤나 긴 공원. 삿포로 TV타워와 옥수수를 파는 매점이 있는 곳. 라일락 축제가 한창이던 곳. 그곳에 앉아 옥수수와 멜론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맨발로 공원을 뛰어다니다가 분수의 물줄기에 몸을 적시며 웃는 것을 봤습니다.
그 순간에 그 시간과 공간은 완전히 나의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