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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08. 2016

처음, 방콕 : 1. 첫인상은 기다림이었다.

처음 방콕: 일곱 날 일곱 가지 이야기. 첫 번째



 새벽 세 시 삼십 분.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아든 시간이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되었다. 방콕의 출입국 심사는 오래 걸리는 것으로 꽤 악명을 떨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영국처럼 까다로워서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다. 단순히 느리다. 게다가 ‘성수기’ 이었다. 성수기가 아닐 때에는 한 시간 내에 수월하게 빠져나온다고도 한다. 하지만 2월은 빼도 박도 못하고 성수기였다.

 만약 비즈니석 이상을 타고 왔다면 항공사 혜택을 잘 체크하면 좋다. 많은 항공에서 비즈니스 석 이상 탑승 시 ‘프리미엄 레인’ 티켓을 제공한다. 이 티켓을 가지고 있으면 일반 출입국 심사 줄이 아닌, 별도로 마련된 통로를 통해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성수기에도 십여 분만에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게 해 주는 마법의 티켓이다. 

 나처럼 간신히 여행비를 맞춰 온 여행자라면 어쩔 수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기다리는 것 자체야 견딜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오래 걸린 출입국 심사 시간 때문에 뒤 일정이 꼬였다는 거였다.

 내 계획은 이랬다. 

 저녁 열두 시에 공항에 도착. 한시에서 한시 반에 공항을 나간다. 공항에서 통로까지 가는 택시비용이나, 근처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우 자는 거나 비용이 비슷하지 싶었다. 그래서 공항으로 픽업을 와 주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 한인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공항 지점과 통로 지점 두 군데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공항으로 픽업을 와 주고, 공항 지점에서 통로 지점으로의 센딩도 무료라고 쓰여 있었다. 같은 지점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에도 근처 지하철역까지는 데려다준단다. 썩 괜찮은 조건이었다. 덜컥 통로 지점까지 예약을 했다. 4인실 방을 쓰는데 하루에 2만여 정도의 가격이었다. 방콕의 숙소 치고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평소라면 좀 더 알아보았을 터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덜컥 예약을 해 버렸다.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했고, 그 주제에 또 일을 받았다. 조급함을 내면 낼수록 스케줄 표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과부하가 걸린 머리는 그 이상의 검색을 거부했다.  

 게스트 하우스의 픽업 차는 사십 분 후에 왔다. 새벽 네 시가 되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홈페이지에 쓰인 것만큼 가깝지 않았다. 도착하니 새벽 네 시 삼십 분이었다. 씻고 침대에 누우니 다섯 시. 차라리 공항에서 두 시간 버티다 지하철을 타고 통로로 가는 게 나을 뻔했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대충 감이 왔을 거다. 이 게스트 하우스는 내게 껄끄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이 날 공항점에서의 숙박이 필요 없는 것이 되어서가 아니다.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린 게 게스트 하우스 탓은 아니다.

 이유는 다음날에 있었다.

 선잠을 자고 이동용 차량에 올랐다. 그 날 아침 이동용 차량을 이용한 건 나를 포함 두 사람뿐이었다. 나타난 게스트 하우스 직원은 자다 깬 기색이 역력했다.

 “둘 다 공항철도역에 내리면 되죠?”

 나는 당황했다. 통로 점으로 간다고 하니 직원은 짜증을 냈다.

 “그런 말 못 들었는데요. 근처 역에 내리세요.”

 결국 나는 공항철도역에 내렸다. 같은 게스트 하우스의 통로 점을 예약한 이유까지 그 순간 사라졌다.


 

 잠시 차량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공항 철도역에서 시내로 나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뿐인가. 방콕의 아침 일곱 시, 지하철 안 풍경은 어떤지도 내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지하철에 탔다. 지하철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방콕의 지하철은 우리나라 수도권 지하철보다는 폭이 좁다. 서로 등과 등을 맞대고 서 있어야 하는 지하철에 캐리어를 들고 타는 것은 살짝 미안한 일이었다. 지하철 손잡이를 멍하니 올려보다가 알았다.

 나는 기다렸던 거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미안하다고 해 주기를.

어쩌면 차를 타고 떠난 그도 기다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줄도 없는 그 엇갈린 기다림만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On the next






포송 [유진]

Blog : http://blog.naver.com/hik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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