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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16. 2016

처음 방콕: 2.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헤맴이다.

일곱날 일곱 가지 이야기. 첫날, 길 헤매기 DAY 1-1





길을 헤맨다.

 보통의 길 헤매기란 초조함과 긴장의 연속이다. 입사 면접 삼십 분 남겨두고 회사를 못 찾아서 헤매어 본 사람이라면, 한동안 내비게이터 어플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길을 헤맨다는 건 목적지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이동이란 대부분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진다. 회사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영화관에 간다. 하루의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런 중에 일과 취미, 공부,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까지 해야 할 일들은 다글 다글 쌓인다. 조금만 눈을 떼면 쌓이다 못해 무너져 내리는 건 아닐까 겁이 난다. 그래서 시간은 쪼개어지고, 또 쪼개어진다. 가야 할 목적지는 점점 많아진다. 일상에서의 헤맴은 실패를 연상시키게 된다.

 그렇지만 헤매지 않는 사람은 없다.

 길을 헤매는 중에 운명적인 로맨스를 만나는 설정이 연애 소설 속 넘쳐흐르는 건 이러한 이유다. 클리셰 Cliché란 일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하지만 누구나 가장 처하기 쉬운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드러내며 탄생하는 법이다.

 여행 중의 길 헤매기는 어떨까.

 많은 여행가들은 여행 중 길 헤매기를 찬양해 왔다. 

 지도와 나침판의 중요성을 강조한 여행가들도 헤맴의 즐거움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초기 여행가들은 여행가이자 동시에 탐험가였다. 더 새로운 곳을 찾아내는 기쁨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냉전시대, 국경과 국경을 넘어 여행하던 때의 여행가들의 사정은 달랐다. 그들은 아무 곳에서나 멈출 수는 없었다. 그들의 헤맴은 개척시대의 탐험가들보다 제한적이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범위 안에서 모험기가 될 만한 이야깃거리를 찾아야만 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이국적인 풍경을 보기 위해 현지의 시장과 뒷골목을 헤맸다. 그때까지도 여행가들은 오지에 대한 사람들의 흥미를 채워줄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때로 그들의 이야기는 과장되었고, 종종 소설 작가들과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도 종종 ‘오지 탐험’이란 말이 붙는 여행기는 부풀려진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진실성 없는 이야기에 열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젠 신대륙은 없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탐험은 전문가들의 몫이 되었다. 여행은 쉬워지고 대중화됨과 동시에, 개인적인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행 중 길을 헤매기를 원한다.

 오히려 여행이 개인의 것이 된 순간, 길을 헤매는 행위는 진정으로 그 의미를 얻었다. 우연을 가장해, 새로운 장소를 찾아내기 위해 눈을 빛낼 필요조차 사라졌으니 말이다.

 가야 할 목적지는 있다. 하지만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아도 된다. 길을 좀 잃고 헤매어도, 실패가 아니다. 그렇기에 여행 중의 헤맴은, 여행보다도 더욱 일상을 벗어난 것이 된다. 사치 중의 사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악의 목적지는 식당이다. 나는 배고픔을 참지 못한다. 그런 사람에게 반드시 정해진 곳에 가 식사를 하라는 건, 목적지만을 향해 돌진하라고 채찍질을 하는 것과 같다. 

 누구든 이처럼 절대 견디기 어려운 것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처음 길을 헤매 보고자 마음을 정했을 때, 그 부분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이건 혼자 여행할 곳을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오토바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베트남 하노이 한복판에 갔다 치면 어떨까. 길을 헤매는 일이 즐겁기는커녕, 극심한 스트레스만을 느낄 것이다. 

 여행은 극기 훈련이 아니다. 여행을 다니다 자연스럽게 약점이 극복되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약점을 극복하겠다고, 일부러 극단적인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을 필요는 없다. 

 다음은 자기 나름의 법칙을 정해 보는 것이다. 핸드폰을 세 번 이상 보지 않는다거나, 헤매던 중 피곤하면 주저 없이 눈에 든 카페에 들어가 쉰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마지막, 가능한 혼자 헤매는 것이다. 혹은 침묵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와 함께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러한 상대를 찾아내기란, 혼자 헤매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더 어려울 터다.

 통로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한 건 오전 열 시가 되어서였다. 짐을 풀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여행 첫날은 일부러라도 일정을 넉넉하게 잡는다. 연착이 잦은 저가 항공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생긴 버릇이다.

 일단 가야 할 곳은 통로 BTS 지하철역이다. 공항철도역에서 막산(makkasan) 역까지는 지하철로, 막산 역에서 통로까지는 택시로 온 터였다. 택시는 몇 번인가 정체 때문에 도로에 멈췄다. 그 사이사이, 택시 창문을 통해 통로 거리를 바라보았다. 통로 지하철역도 스쳐 지나갔다. 저곳이 통로에 묶는 동안 내 출입문이 되어줄 곳이구나 싶었다.

 출입문으로 가기까지 조금 헤맨대도 나쁠 것 없다. 



On the next






포송 [유진]

Blog : http://blog.naver.com/hik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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