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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23. 2016

처음 방콕: 3. 그 도서관을 만나거든

일곱날 일곱가지 이야기. 첫날, 길 헤메기 DAY 1-2




미에 할머니와 TCDC (Thailand Creative Design Center).

그 짧은 만남에 대한 이야기.




 샌드위치를 먹으려던 참이었다. 

 방콕의 더위와 골목길에 채 익숙해지지 않은 첫날이었다. 프롬퐁(Phrom Phong) 역에 도착해 쇼핑센터 안으로 숨어들었다. 눈에 익은 노란 간판이 보였다. 오봉팽(Au Bon Pain). 노란 파라솔이 트레이드마크인 체인 카페다. 흘린 듯 들어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한 건 그 파라솔 때문이었다.

 샌드위치를 주문해 자리에 앉았다. 더위를 씻어내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수첩을 꺼냈다. 끼적끼적, 샌드위치를 그렸다.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세요?”

 뒷자리에서 밀짚모자를 쓴 할머니가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잠시간, 손짓이 섞인 대화가 오고갔다. 할머니의 이름은 미에. 일본인이셨다. 이제 곧 일흔이 되신단다. 그림과 디자인을 좋아해서 여행을 가면 꼭 한군데쯤 전시회를 가신다고 했다. 미에 할머니는 내게 이 백화점의 6층에 꼭 가보라며 눈을 빛내셨다.

 “지금 전시회가 아주 좋아요.”

 미에 할머니는 양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이렇게, 귀여운 다람쥐 도장도 있으니 꼭 가 봐요.”

 미에 할머니가 카페를 나가고, 나는 우걱우걱 샌드위치를 먹어 치웠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위는 이미 완벽히 씻겨 내려갔다.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처음 온 곳에서, 처음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추천해준 곳이다. 그러니 가 보자 했다.  어차피 부탁받은 물건을 사러 가는 것 말고는 별다른 예정이 없었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백화점에서 구색내기로 만들어 놓은 문화 센터 정도겠지 싶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렸다.







 엠포리엄 백화점 6층, 타이 크래티브 디자인 센터(Thailand Creative Design Center) 도착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놓인 팸플릿을 살폈다. 바깥쪽에 위치한 갤러리 Ⅰ,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있는 갤러리 Ⅱ, 아트샵. 그리고 안쪽에 도서관이 있었다. 여권을 보여주면 하루 동안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구경을 시작해 볼까. 갤러리로 향했다.

 TCDC의 전시는 때에 따라 바뀐다. 내가 방문했을 때의 전시 주제는 자연과 공존하는 디자인이었다. ‘found wood working’. 전시는 훌륭했다.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작업 과정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미에 할머니가 말한 다람쥐 스탬프는 인기가 좋았다. 흰 종이에 다람쥐가 가득 찍혀 있었다. 

 나도 도장을 집어 들었다. 꾹 눌렀다. 보지도 않고 그냥 그렇겠지, 생각했던 것을 반성했다. 무엇이든 어떤 곳이든 내가 직접 가지 않고서야 어떤지 알 수 없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머리 어딘가에 뿌리내린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행 중에는 그 뿌리가 조금은 쉽게 뽑히기도 한다.

 아트 숍까지 둘러보고 나니 머리가 노곤 노곤해졌다.

 짧은 복도를 가로질렀다. 건너편으로 컴퓨터 앞에 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복도 끝에 도착해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책이 가득한 공간이 나타난다. 도서관이다. registration에 여권을 보여주고 하루 이용권을 받았다. 

 도서관에 들어섰다.



 도서관에는 다양한 디자인 서적들이 가득했다. 진지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편하게 책을 읽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 잘 어울려져 있었다. 조용했지만 엄숙하지는 않았다. 

 창 앞에 놓인 붉은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았다. 창문 밖으로 방콕의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한참을 그 앞에 앉아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내가 커다란 그림 같았다. TCDC 도서관은 그 자체가 도시 속의 디자인 작품이었다.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미래 태국 사업의 중심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이 좀 더 쉽게 정보를 얻고 교류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자. TCDC의 설립 목적이다. 그렇기에 TCDC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지어진다는 것이다. 백화점 한가운데 떡하니 들어서 있던 도서관의 정체다.

 TCDC 2016년 기준 총 14개의 전시관을 오픈했고, 2013년에는 치앙마이에도 센터가 만들어졌다. 엠포리엄 백화점이 아니라도, 태국 어딘가를 여행하다 불쑥 눈앞에  TCDC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럴 때면 망설이지 않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마음에 드는 전시회를 하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림으로 가득한 책을 한 권 뽑아들고 찬찬히 살펴보아도 좋을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곳을 찾아가 보라 말해주고 싶어졌다.

 




On the next






포송 [유진]

Blog : http://blog.naver.com/hik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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