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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12. 2016

사랑은 OK, But 우정은 필요 없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Suicide Squad를 보고 짧은 수다떨기

 


※ 개인적인 감상이 주입니다만, 미리니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빌런들의 영화가 온다. 카피만으로 근사하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영화화가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대했다. 빌런들의 모임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거기에 할리퀸의 코스튬이 한몫 거들었다. 영화 개봉 전부터 컨셉 표절 문제가 불거졌을 정도니깐. D.C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더욱더 기대했다. 이미 2014년에 이 빌런 모임을 주인공으로 한, 제법 근사한 OVA 'Batman: Assault on Arkham'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그 정체를 한 번에 설명하기 썩 난해한 면이 있는 수어사이드 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영화화된다면 분명 이 아캄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하게 되리라. 그렇다면 영화로도 썩 볼만한 게 나오지 않겠는가. 빌런들이 D.C의 부진을 씻어내 주지 않을까. 그 기대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 기대감을 덮치는 불안 요소들도 존재했다. 시나리오 완성까지의 시간이 짧더라 하는 소문, 워너의 간섭이 지나치자는 소문 등이 그것이었다. 그럼에도 트레일러는 잘 뽑혀 나왔고, 워너에서는 할리퀸 단독 주연의 영화를 개봉하겠다는 등의 설레발까지 치며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흥행을 예상했다. 그리고 현재 북미 기준 1억 4500만 달러 흥행 수익을 뽑아냈다. 흥행이라는 면에서는 배트맨 대 슈퍼맨보다는 양호한 성적을 내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다.

 하지만 쏟아지는 혹평들. 그 혹평들은 앞으로 이 시리즈가 무사히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두 번 봤다. 한 번은 D.C 코믹스를 읽는 친구와 봤고, 또 한 번은 D.C의 시리즈를 영화로만 접한 친구와 봤다. 두 친구의 반응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는 이 두 사람의 중간점이었다. 친구 때문에 D.C의 세계관을 이것저것 주워듣고, 몇몇 OVA를 봤지만 시리즈를 순서대로 말해보라면 못 한다. 내가 능동적으로 판 부분이 적다 보니 캐릭터 이야기가 엄청나게 헷갈릴 때도 많다. 그나마 아캄 OVA에 반해 빌런들의 계보는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배트맨의 계보는 아직도 영 아리송하다. 내게는 D.C의 빌런들은 매력적이었지만 영웅들은 아무래도 영 취향이 아니었던 탓이다. 

 D.C 코믹스를 읽는 친구가 가장 혹평한 부분은 D.C의 빌런들이 우정을 외친다는 거였다. 펑키하고 코믹한 분위기, 좋다. 그 편이 먹힌다고 판단했다면 색깔 변화는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캐릭터들의 기본 색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캡틴 부메랑이 아무런 역할도 못 하는 찌질이처럼 나온 것에도 분노를 터뜨렸다. 한낱 소모품으로 전락한 인챈트리스에게는 애도를 표했다. 결론적으로 메타휴먼 강조하고, 저스티스 리그와 꾸역꾸역 이으려고 하다 보니 설정이 개판되었다는 총평이 나왔다.


 

 D.C 세계관에 관심 없고 영화로만 쭉 이어서 봐 온 친구의 제일 큰 불만은 조커였다. 이전까지 중후한 악당의 매력을 풀풀 풍기던 조커가 왜 갑자기 갱스터 두목이 되었냐는 것이다. 조커의 캐릭터 변화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부분인데, 친구는 불호 쪽이었던 모양이다. 캡틴 부메랑과 카타나는 대체 왜 나온 건지 의아해했으며, 아만다는 정체가 뭔데 저렇게 최종 보스냐고 뜨악해했다. 메타 휴먼인데 고작 폭탄 한방에 죽다니 납득이 안 된다고 했다. 이외로 할리퀸의 행동이나 대사에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 할리퀸이 인채를 죽이며 친 오글거리는 대사도 이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캐릭터 같으니깐 뭐, 다른 빌런들 사랑 이야기 듣고 애들도 나랑 같구나 그렇게 생각한 거 아냐? 이런 해석이었다. 오히려 디아블로가 이해가 안 되었다고 한다. 대체 왜 거기서 친구들 건드리지 말라는 대사를 날리는 건지. 이전에 뭔가 끈끈한 프렌드쉽이 형성될 사건도 전무한데. 그럼에도 디아블로가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걸 보면, 이외로 사람들에게 어필한 캐릭터는 디아블로였구나도 싶다.


 조커의 캐릭터 변화, 최종 보스 포스 폴폴 풍기는 아만다에 대해 D.C 코믹스를 읽은 쪽이 태클을 안 걸었던 건, 이미 그 친구의 머릿속에는 그 버전의 조커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조커와 할리퀸의 관계를 미화시킨 이유가 그나마 조커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가 아니겠냐, 하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영화 시리즈에서는 그렇게 폼을 잡고 나왔는데 느닷없이 때리는 남편 버전의 조커로 등장했다가는 팬 다 떨어져 나갈 것 아니냐는 것이다. 

 나도 이 부분은 동의한다. 내가 봐도 조커와 할리퀸의 관계는 때리는 남편, 매 맞는 아내 딱 이 구도니깐. 참고로 수어사이드 스쿼드 영화판에서의 조커와 할리퀸의 로맨스만 건졌다! 하는 분은 절대 'Batman: Assault on Arkham' 이 OVA를 보면 안 된다. 조커와 할리퀸이 한치 미화도 없이 드러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부분을 제외하면 두 친구의 혹평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표현이 다르다 뿐이지, 근본적인 문제는 같았다.



1. 세계관의 재정비, 역량 부족일까. 배려 부족일까.


 마블이든 D.C이든, 이른바 아메리칸 코믹스들은 역사가 길다. 그리고 그 긴 역사만큼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죽은 슈퍼맨이, 한쪽에서는 자기 행성으로 돌아가서 애 낳고 잘 살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다양한 버전들은 실상 코믹스 팬들에게는 별 문제가 안 된다. 자기가 원하는 버전을 골라 읽으면 되니깐. 마니아들 중에는 이 버전별 족보를 정리하고 달달 외우는 사람도 있다. 버전이 다양해지면 다양해지는 데로 팬들 사이에서 해석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다양한 버전이, 영화화될 때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마블 코믹스 21호에 붙어있는 부록 dvd가 아닌 이상, 영화는 한 작품이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다양한 버전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혹은 여러 버전을 섞어서 아예 영화 버전으로 새로운 영웅을 만들어내던가. 세계관 역시 마찬가지다. 복잡하게 엃혀있는 히어로들 간의 모든 관계를 가져올 수도 없고, 모든 세계관을 통째로 옮겨 올 수도 없다. 세계관에 충돌이 생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마블은 이 세계관의 충돌을 깔끔하게 정리해 나갔다. 코믹스판에서는 이어져 있는 어벤저스 세계관과 엑스맨 세계관을 아예 분리시켜 버렸다. 어벤저스 쪽은 철저하게 현실과 연결된 능력자 집단이 되었다. 그와 반면 엑스맨은 뮤던트의 개념을 그대로 가지고, 초능력자들끼리의 전쟁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 결과 최대 피해자는 사실상 막시모프 쌍둥이지 싶다. 서로 죽고 못 사는 이 쌍둥이는 한 명은 어벤저스, 한 명은 엑스맨에서 따로 활약하게 되었다. 쌍둥이의 출생은 평범한 내전 고아로 조정되었다. 어벤저스에서는 퀵실버 팬들이 분노하기에 충분한, 엉성한 설정으로 퀵실버를 죽여 버리는 결단성도 보였다. 이러한 세계관의 조정 덕분에, 시빌 워는 마블의 엃히고 설킨 세계관을 모르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 

 D.C는 이 세계관의 정리를 원활하게 이루어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에 대한 사람들의 엇갈린 반응은 여기에 이유가 있다. D.C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버전의 조커가 나타날 것이라는 걸 조금도 언급해주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아메리칸 코믹스에 대한 이해를 깔고 봐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 캐릭터에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는 걸, 관객이 배려하고 봐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 앞으로는 이 시리즈로, 이 버전으로 갈 거외다 이야기를 할 거였다면 D.C는 이전에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 언급을 해주는 편이 좋았을 거다.

 혹은 D.C가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그 세계관 재조정의 첫 타자로 삼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욱, 수어사이드의 톤 파괴가 아쉬워진다.



2. 포장지는 바뀌어도 내용물이 바뀌면 안 되잖아


 맨 오브 스틸 당시 D.C는 분명히 밝혔었다. 마블을 의식해서 D.C의 색을 버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고 난 후 든 생각은 딱 하나다. 

 과연 D.C의 현 총괄자는 D.C만의 특징을 무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D.C의 가장 큰 특징은 '어둠'과 '미묘한 현실성'에 있다고 본다. 고담 출신의 영웅과 빌런들은 어둠을 바탕으로 태어난 캐릭터들이다. 고담의 영웅들은 개인의 어둠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D.C의 영웅들은 빌런들과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그들은 지구 정복을 꿈꾸지 않는다. 당장 자신의 돈과 욕망을 위해 움직인다. 그들의 능력과 외양은 비현실적일지라도, D.C의 빌런들이 행동하는 욕망은 현실적이다. 내가 저런 능력을 얻는다면, 어쩌면 나도 저렇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현실성을 가지고 있다. 당장 천재가 되면 컴퓨터를 해킹해서 로또 번호를 알아맞히지, 히드라를 외치면서 지구 정복을 위해 내 목숨을 내어놓을 것 같지는 않다는 거다. 

인간을 벗어난 자들, 이른바 메타 휴먼도 D.C에서는 미묘하게 현실적인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슈퍼맨을 보라. 마블 쪽의 캐릭터와 대치시킨다 생각하면 슈퍼맨은 토르와 비슷한 급이다. 둘 다 외계 생명체다. 하지만 D.C는 이 외계 생명체를 어디까지나 '외계인'으로 한정시켜 지구에서도 통제 가능한 약점까지 붙여놓은 반면, 마블에서의 토르는 어찌 되었던 신이다. 

D.C의 영화가 무겁고 진중한 톤으로 많이 등장했던 것은 이러한 특징들을 녹여내기에 그 방법이 수월했기 때문이리라. 무엇이든 내용물과 포장지를 일치시키는 편이 디자인하기에 편한 법이다. 내용물과 다른 포장지를 입혀놓는 것은 여러 의미로 위험부담이 높은 일이다. 포장지를 벗겼을 때 실망보다 서프라이즈를 선사할 수 있는 역량이 각본가와 감독 모두에게 있어야 하니 말이다.

 문제는 D.C 영화의 무거운 톤이 점점 대중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여기에는 시대적인 선호도도 한몫 거들고 있다. 사람들은 이미 머리 아픈 일이 너무나도 많다. 영화까지 무거운 톤을 보고 싶지 않아진다. 설령 무거운 메시지라도 좀 더 경쾌하게, 재미있게 녹여내 주는 영화들이 얼마든지 있다. 히어로에게 친근함은 느끼고 싶지만, 그 히어로들이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좀 화끈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한 선호도에서 D.C의 영화들은 조금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D.C는 장담했던 것과 다르게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영화의 톤을 슬쩍 조정했다. 기존의 히어로물보다 조금 더 펑키해졌다. 당장 히어로물에서 톤 변신을 꾀하기에는 부담스러우니, 빌런 모임에서 시도해보자 싶었던 것인가 싶다. 어차피 애네는 빌런이거든. 히어로물이 아니거든. 그러니 영화 톤이 좀 달라져도 이상할 게 없거든.

대충 이런 마음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이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D.C의 톤을 버렸다고 힐책하는 것은 영화의 영상 때문이 아니다.

 영화의 영상이 묵직하고 어둡게 찍혔는가 어떤가. 그건 어디까지나 포장지다. 포장지는 감독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바꿔 입힐 수 있는 것임을 모두가 안다. 설령 그것이 '이제까지의 D.C풍'이라 통용되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문제는 내용물이었다.

 포장지가 바뀌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내용물이 D.C만의 색을 잃어버린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MADE IN D.C'를 기대하고 포장지를 열었더니 안에 든 것이 정체불명의 물건이라면 말이다. 박스 케이스가 달라졌어도 애플은 애플이지, 하고 열었더니 리모컨 두께만큼 두꺼워진 아이폰이 튀어나온 격이다.



3. 수어사이드 스쿼드, 사랑은 필요해도 우정은 필요 없다 


 D.C의 빌런들, 특히나 고담 출신 빌런들은 개인적이다. 당연하다. 개인의 욕망을 기반으로 움직이니깐. 필요에 의해 팀이 형성되는 경우는 있다. 같은 임무를 수행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빌런, 악당이다. 임무를 수행하다가도 자신의 욕망이 성취되면 미련 없이 다른 팀원의 뒤통수를 친다. 같은 임무를 수행했던 빌런과 다음에 재회했을 때에도 동료애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이 철저한 개별성이 D.C빌런들의 매력이다. 누구든 한 번쯤은 상상하지 않을까. 지구 따위, 사회 따위, 기존의 모럴 따위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과 사랑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 물론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것을 D.C의 악당들은 서슴없이 보여준다. 

 사연도 있고 상처도 있고 사랑도 있는, 그러나 그조차도 철저하게 자기 위주인 악당들. 사연도 있고 상처도 있고 사랑도 있지만, 자기 위주가 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들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빌런들이다. 이들은 반사회적이며, 자신들이 반사회적이라는 점에 있어 연민을 느끼거나 세상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을 위해 일해도 세상은 우리를 미워해, 그렇게 외치는 신파는 는 D.C의 빌런들 사이에서 애당초 성립이 안된다는 거다. 우리가 세상을 위해 일을 할 수는 있지. 우리한테 메리트가 있으면! 하지만 일을 안 해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든 말든, 그건 내가 신경 쓸 바 아니거든. 이게 D.C 빌런들의 반응이라는 거다.

 그렇기에 이 빌런들의 사랑도 지극히 개인적이다. 개인적이기에, 이들의 사랑은 파멸적이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데드 샷이다. 데드 샷은 좋게 봐서 부성애 넘치는 아버지지, 뒤집어 보면 자기 딸을 향한 사랑만으로 움직이는 악당이다. 다른 사람의 머리를 날리는 데에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내 딸과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다른 사람 머리를 날리겠다는데 그게 뭐. 이게 그들의 사랑인 셈이다.

 그런데 이 빌런들이,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우정을 외친다. 

 우정만 외치나. 신파도 연출한다. 이게 결정적인 D.C의 톤 파괴이다. 영상이 펑키하게 찍혔든, 코믹한 부분을 첨가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다. 흡사 배트맨이 고담 따위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지구를 구해야지 하고 외치는 걸 본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모두 의아해했으리라. 저 배트맨은 팬티만 갈아입은 슈퍼맨이 아닐까 하고. 

 우정을 외칠 거면 그 우정을 외칠만한 당위성 있는 시나리오라도 내어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술판 한 번에 우리 모두 친구가 되는 장면을 연출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차라리 디아블로가 할리퀸에게 한눈에 반하게 만들던가. 그럼 디아블로가 자기 한 목숨 내어놓는 당위성이라도 부여되었을 텐데 말이다. 

 개인적으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아쉬운 영화였다. 차라리' Batman: Assault on Arkham' 시나리오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너의 입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전작들의 부진을 너무 신경 쓴 탓인지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너무나 많은 것이 밀어 넣어졌다. 앞으로 저스티스 리그의 활동까지 선포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는지 메타 휴먼과의 싸움이 전체를 지배해 버렸다. 스토리를 설명하기에 급급한 전개에 캐릭터들이 매력을 어필할 씬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아쉬웠다. 망작이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는 D.C의 빌런들은 여전히 매력적이었으니깐. 

하지만 한 번만 더 이들이 우정을 외치면, 나는 앞으로 어떤 빌런이 나와도 D.C의 시리즈를 볼 것 같지는 않다. 

 D.C의 총괄자는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D.C를 둘러싸고 있던 포장지와, 그 포장지를 바꿀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을.

 그리고 포장지가 아닌, 사람들이 기대하는 'MADE IN D.C'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에 대한 좀 더 진지하고 본질적인 고민이 없다면 세계관의 정리, 리붓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숭숭 여기저기 구멍이 난 세계관이 시리즈로 이어진다면.

 과연 그 시리즈가 사랑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블과 D.C의 라이벌전은 어느 순간 기울어졌다. 적어도 영화판에서는 확연한 승패를 드러냈다. D.C의 새로운 시리즈를 알렸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한국 기준 누적 관객수 225만 명을 모았다. 천만을 훌쩍 넘겼던 어벤저스의 기록에 비해 그 차이가 상당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배트맨 대 슈퍼맨. 내 주변의 사람들은 '저스티스 리그'의 존재조차 몰랐다. D.C 코믹스에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이야 저스티스 리그라는 것이 있다더라를 알았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배트맨 대 슈퍼맨? 그냥 히어로 둘이 이벤트성으로 치고받고 싸우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다.

 D.C는 불친절했다. 마블이 어벤저스 영화판을 개봉했을 때를 기억해보라. 그들은 공공연하게 외쳤다. 히어로들이 모입니다! 엄청난 능력자들이 모인 초능력 팀이라고요! 그에 비해 D.C는 어땠는지. '저스티스의 시작'이라는 타이틀은 달았지만, 그 저스티스가 대체 뭔지 노골적으로 외치지를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배트맨과 슈퍼맨을 빼고는 D.C의 히어로들은 인지도가 낫다. 아쿠아맨과 플래시를 아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 집에 그래픽 노블 한두 권쯤은 있구나 짐작해 봐도 좋을 거다. 

차라리 저스티스 리그를 미리 터뜨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저스티스 리그의 성립 배경으로 두세 편의 영화를 끌어대더니, 아예 리붓을 선포하는 '저스티스 리그'를 터뜨린 후 백 플래시로 성립 과정을 시리즈물로 내놓는 게 오히려 사람들이 이해하기에 좋지 않았을까.

 D.C의 새로운 시리즈는 이미 시작되었다. 나는 D.C가 좀 더 친절해지기를 바란다. 

적어도 D.C내부에서 통일된 세계관을 정립했다면, 그것을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파악해 나갈 수 있는 시리즈로 영화가 전개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과연 큰 욕심인가. 궁금해진다.(*)







포송 [유진]

Blog : http://blog.naver.com/hik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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