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엄마 말씀에 따르면 어릴 때도 얌전히 앉아서 책 보는 것을 좋아하더니 4돌이 되자 따로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혼자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엄마가 과학 전집 같은 것을 사주면 돈 아깝지 않게 모조리 읽어버리는 나였고,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놀지 않고 책만 보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나였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그 좋아하던 책을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게 되어버렸다. 순수하게 독서에서 즐거움을 찾던 나였는데 입시를 맞이하며 책을 읽는 것이 노동이 되어버렸다. 교과서나 문제집 외에 읽는 모든 것이 버거웠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독서 습관을 잃어버린 것이 참 아쉽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과 수업 따라가기에 바빴고, 책이란 것은 펼쳐보지도 않았다. 그런 나의 독서 의지를 다시 불타오르게 만든 계기가 있었다. 같은 학번의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니가 '너 무라카미 하루키를 모른단 말이야?' 하고 던진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독서와 아주 담을 쌓고 살았기에 그 유명한 하루키도 모르고 살았다. '그 작가가 누구길래 그래?' 그날로 학교 도서관에 방문하여 하루키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도서 검색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로 검색해서 나오는 책을 한 권씩 읽기 시작했다. 유명한 '상실의 시대'부터 단편까지 웬만한 건 다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학년 시절에는 시간도 많고 통학시간이 편도로 2시간 걸려 책 읽을 시간이 많았다. 책 읽는 즐거움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하루키뿐 아니라 영화화된 소설인 '향수'를 읽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에도 푹 빠져 그 작가도 한동안 탐색했다. 파울로 코엘료나 눈먼 자들의 도시로 유명한 주제 사라마구를 접한 것도 대학생 때였다. 남들이 재밌다는 책을 읽기도 하고, 우연히 접한 책이 재미있으면 그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니면 도서관을 돌아다니다가 표지가 마음에 들거나 재미있을 것 같은 책들을 읽기도 했다. 너무 오래되어 어떤 책을 읽었는지 일일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시 독서의 즐거움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난다(비록 소설 위주의 독서 편식이었지만).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던 것이 3학년이 되면서 각종 실습과 전공과목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4학년이 되고 약사고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더더욱 바빠졌던 기억이 난다.
졸업 후 취직을 하면서는 병원에 적응하느라, 또 뒤늦게 배운 음주에 신이 나 한동안 책을 멀리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적응하고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 에쿠니 가오리와 히가시노 게이고에 매력을 느끼고 두 작가의 책들을 한동안 모아댔다. 특히나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잔잔한 문체와 담백한 내용은 촉촉했던 나의 20대 감성을 충분히 채워주었다. 그렇게 읽어온 책(비록 여러 가지 핑계로 얼마 안 되지만)들 중 가장 좋았던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늘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을 꼽는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도 이 감성을 나누고 싶다.
또한 베스트셀러인 냉정과 열정사이도 나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화까지 된 유명한 소설이어서 영화도 여러 번 돌려봤다. 이를 보고 피렌체가 너무 가보고 싶어 져서 친구와 이탈리아까지 방문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또다시 게을러져 꾸준히 독서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독서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가끔씩 즐기는 취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흥미로운 책을 만나면 여전히 설레고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