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 차지연
좋은 음악만큼 좋은 말도 많이 남긴 존 레넌은 이런 말도 남겼다.
'인생이란 네가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바쁠 때 너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 말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내가 한창 이 글들을 쓰고 있던 때에
갑작스럽게 엄마가 돌아가셨다.
인생이란 정말 이런 걸까.
엄마의 장례를 치른 지 일 년. 그게 아직도일지 벌써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내면서
무언가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그 무언가에 대해 눈곱만큼이라도 받아들였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나눌 수도 쓸 수도 없었다. 딸이자 엄마인 나에 대해서도.
누군가의 휴대폰 액정에 '엄마'라는 단어가 뜨는 것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딸아이가 내게 ‘엄마!'하고 부르는 것 마저 아프게 박혀왔으니까.
그러니까 다시는 옛날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끔 만드는,
시간조차 치유할 수 없는,
너무 깊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면
도저히 한 글자도 쓸 수 없다는 걸 이 시간을 통과하며 알게 되었다.
산다는 건 뭘까. 꼭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의 근원이자 원형이 영영 곁에서 사라지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 처절한 감정은, 건방지게도 별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닿게끔 했다.
하지만 그렇게 삶의 바닥으로 속절없이 치닿다 결국 가장 마지막 끝에 닿아 탁-하고 차 오르는 순간도 있었다.
그 순간, 나에게는 역시 노래가 있었다.
서편제의 ost인 차지연의 '살다 보면'
혼자라 슬퍼하진 않아
돌아가신 엄마 말하길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 말 무슨 뜻인지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아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봐
엄마가 쓰다듬던 손길이야
멀리 보고 소리를 질러봐
아픈 내 마음 멀리 날아가네
살다 보면 살아진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모르겠다.
하지만 살다 보면 아마도 살고 싶어질 것이고 또 어느 날에는 잘 살고 싶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 나도 좋은 엄마가 될 것이라는 것도.
왜냐면 그것이 엄마가 나에게 알려준 엄마의 모습이니까.
내가 글 쓰는 걸 누구보다 좋아했던 엄마를 떠올리며,
한 자 한 자 용기를 내서 쓰는 짧은 글.
봄의 어귀에서 살랑 따뜻한 바람이 불고, 감은 눈 위로 짧은 머리가 찰랑인다.
엄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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