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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STA Mar 18. 2021

민중의 지팡이 경찰관?

뭔가 이상한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거 아니죠?

결국 유치원에서도 일찍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고 우리 반 아이들의 졸업식만 겨우 볼 수 있었다. 뒤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다른 선생님들과 통화를 하며 마무리했고 지치고 힘들었을 선생님들께 나의 일까지 떠맡긴 죄책감이라는 수렁에 빠지곤 했다. 그런데도 무기력했으며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몸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새벽시간 가해자에게 보낸 문자


결국 나는 '적응 장애 및 불안장애' 소견으로 경찰서와 직장에 내야 하는 진단서를 끊었다. 이후 진단서, 블랙박스 영상 제출 및 진술서 작성을 위해 경찰서를 찾았다. 무척 떨렸다. 앞서 경찰과 했던 통화에서 경찰은 굉장히 내가 잘 못 한 듯 미묘하게 격정적인 말투로 나를 대했고(앞편의 통화 참조) 나는 계속 주눅만 들었다.




이날 가기 전 나는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경찰서 방문이라고 해봤자 아이들과 동네 한 바퀴 돌며 파출소 가본 게 전부였기 때문에. 조서를 쓸 때 조심해야 할 부분들이나 방법들을 찾다 보니 나처럼 억울하다는 일부 의견이 눈에 띄어 글도 몇 가지 읽었다. 그리고 드디어 경찰서에 도착해서 조서를 적기 시작했다. 조서를 쓰기 전에 경찰은 가해자는 이미 조사를 성실히 받고 다 사과를 하고 갔다며 나를 질책하듯 읊조렸다. 도대체 누구한테 사과를하고 왜 가해자를 성실하다 말하는 건지 그때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해 바짝 긴장했다.

근데 웬걸. 사건 일지부터 엉망진창이었다. 사고가 난 현장도 잘 못 기록되었으며 방향이랑 사건에 대한 개요가 뭔가 아주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경찰관은 그런 것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어갔지만 이미 나는 그 부분에서 신뢰라는 것은 잃었으며 어제 읽었던 조서 쓰고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의 글이 떠 올랐다.


그리고 경찰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했다.

왜 늦게 병원에 갔는지, 그리고 사건 당일은 어떠했는지, 앞으로의 행동에 등에 관해서 물어봤던 것 같다.

그 중 나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것을 가장 많이 피력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경찰관이 무슨 종이 뭉텅이를 가져왔다. 가해자가 넘겨줬다는 나와 가해자의 문자 내용들이었다. 경찰관을 그것을 내 앞에서 대충 팔락거리며 도대체 어느 부분이 무서운 거냐고 물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사과를 하고 있는데 뭐가 무섭냐며 수치심을 주었다. 나의 감정이었는데. 나는 느꼈는데. 나의 감정을 부정당했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조서에 내가 당시 입은 피해, 무서웠다는 말과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말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진심이었기에. 모든 것이 거기서 시작되어 꼬인 일이기에.


조서를 다 쓰고 지장도 찍고 나왔는데 어찌나 울컥하던지 경찰서 계단 앞에서 휘청거리다 주저앉아 많이 울었다. 서러웠다. 분명 나는 피해자였고, 내가 원한 것은 돈도 뭣도 아니라 그 사람이 응당히 벌을 받는 것과 내가 마음 편히 치료 받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병원에 다니다 아빠의 지인인 경찰분께 사건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문의했으나 담당 경찰관에게 물어보라셔서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정말 웃지도 못할 일이 일어났다.

피해자인 내가 제출한 증거자료(계속 피해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내가 잘못한 사람처럼 여기게 돌아가는 상황 때문이다.)블랙박스로 담당 경찰관은 마디모(마디모란 사고 당시의 운행과 파손을 바탕으로 운전자가 상해를 입을 수 있는지를 판단해주는 프로그램.)



내가 제출한 자료로 나를 대상으로 마디모를 신청했다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마디모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 일명 '나이론(보험사기 등을 위해 과잉진료는 하는 사람)'환자를 걸러내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도대체? 나를? 왜?


그리고 얼마 뒤 회신이 왔다.

 

다른 설명이나 군더더기 없이 이 결과만을 보내왔다. 무슨 뜻일까? 나보고 이쯤 됐으면 적당히 해라, 뭐 그런 뜻 정도 된 건가? 상황이 미치게 돌아가는 게 참 말이 안 됐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강조했듯이


나를 상처 입힌 사람에게 응당한 벌을

내가 입은 상처에 합당한 치료를


머리가 멍했다. 나를 지켜줄 거라 굳게 믿었던 공권력, 경찰관. 오히려 나를 향해 그 사람은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나는 이제 누구에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어디에 나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을까. 들인 숨이 막막하고 어지럽기만 했다. 그 이후로도 꿋꿋하게 병원에 다녔지만 이미 놓아버린 모든 것을 나는 다시 잡지 못했다.




<경찰4 警察>


명사  

 1. 경계하여 살핌.      

 2. 행정 국가 사회의 공공질서와 안녕을 보장하고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 또는 그 일을 하는 조직. 국민의 생명ㆍ신체ㆍ재산을 보호하고 범죄의 예방과 수사, 피의자의 체포, 공안의 유지 따위를 담당한다.

 3.  ‘경찰 공무원’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담당 경찰관은 민중의 지팡이였을까?


나에게는 끔찍한 민중의 곰팡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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