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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STA Mar 17. 2021

주치의 선생님과의 만남

feat.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거부감


처음엔 정형외과 치료를 받다가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 정신건강의학과를 연결해주었다. (여기서 현재 주치의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정신과? 설마 내가 정신적인 병이 있다는 거야?' 

 정신건강의학과라고 하니 어쩐지 껄끄럽고 가기 싫은 마음이 생겼지만 계속되는 두통과 수면장애를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우선 가보기로 했다. 역시나 마음이 가볍지 않았는데 가자마자 검사지 서너 가지 종류를 주며 다 하고 나면 간호사에게 내라고 했다. 임상 심리척도 검사라는 뭉텅이였는데 우울, 스트레스, 수면의 질, 불안 민감성, 특성 불안, 상태 불안 검사까지 꽤 여러 가지 검사지에 문항들을 읽으며 천천히 체크했다. 체크하는 내내 해당 사항이 있거나 높은 점수에 체크해야 할 때마다 문득문득 '나 정말 괜찮은 걸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겨우 제출하고 생각을 해보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며 나는 왜 여기 왔는지 진료실은 어떨지 머릿속에 무수 많은 생각이 일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내 이름이 불렸다. 

깜짝 놀랐다. 간호사 선생님은 왜 그렇게 놀라시냐며 웃어 보이셨다. 그러게 말이다. 나는 그때 즈음 이상하리만치 자주 놀랐다. 작은 소리에 민감해졌고, 인기척도 잘 느끼지 못했다.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보다 하며 지내다 한 날은 급식소에서 선생님 한 분이 갑자기 뒤에서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고 하며 말씀을 해주셨는데 수저를 집어 던지고 목이 쑥 들어갔다. 놀란 건 나뿐 아니라 그 선생님과 뒤따르던 반 아이들마저 나의 놀람은 그야말로 '갑분싸'를 시전했다. '내가 너무 밥을 집중해서 먹었나?' 선생님께서는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셨는데 내 쪽이야 말로 괜히 오바스러운 행동으로 선생님을 놀라게 해드린 게 죄송했다. '이게 그리 놀랄 일인가?' 그 선생님께서는 거의 매일 같은 말을 하셨던 분이었고 마주치면 또 그 말씀을 하시겠거니 하는 일상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 가능 한 일이었지만 그날은 그렇지 못했고 그날 이후 그 선생님과는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만 하게 되는 사이가 되었다.



똑똑. 네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에 아주 망설여서 자세도 어정쩡 빼꼼히 선생님을 멀뚱 쳐다보다 인사를 드린 걸로 기억한다. 


"안녕하세요"

"네 소우주(가명)씨 어서오세요"

"어디가 안 좋으신가요?"

"음... 잘은 모르겠는데... 제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가 났거든요..."

"아이고 그러셨구나! 다치신 덴 없으시고요?"

"네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아닌 것 같고...."


선생님은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물어보시기도 하고, 당시의 감정은 어땠는지 라던가 또는 검사지를 보기도 하며 걱정과 달리 상담이 원활히 이루어졌다. 그간 있었던 일들에 관해 설명을 하는데 선생님께서


 "당연히 그럴 수 있죠. 누구나 놀랄 수 있는 일이고 누구나 두려울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해주시는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실 나는 외로웠던 걸까? 저 말이 뭐라고 그렇게 혼자 싸우는 것 같았던 시간을 보듬어 주시는 것 같았다. 경찰은 이제 와서 병원을 가느냐며 나를 무슨 보험사기꾼이라도 된 마냥 몰아쳐 나도 내가 잘못 한 건가 하고 생각해 다 포기할 무렵이었기에 더욱 감정이 북받쳤다. 동료 선생님들도 겉으로는 걱정하셨겠지만 바쁜 시기에 나도 모르게 매일 지각하는 나를, 어떤 날은 결근까지 하는 나를 생각해 주실 수 없었으리라. 오히려 내 일까지 떠맡게 된 것에 감정이 좋을 리는 없을 터. 가족들도 각자의 일들도 바쁘게 지내며 그저 가해자에 대해 분노할 뿐 나의 상태에 대해서는 외상에 대한 이야기뿐이었으며 가까운지인들 모두 '그만하길 다행이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선생님은 달랐다. 내가 이야기하기도 전에 내 증상에 대해 예측을 하시며 일정한 목소리, 치우치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의 상담, 상담과 동시에 나의 문제를 진단하시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연히 전문의니까 그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겸비하였으므로 당연한 일일지라도, 혹은 나와 같은 환자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해도 나에겐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치유가 되었다. 


결국 나는 '적응장애 및 불안장애' 소견으로 경찰서와 직장에 내야하는 진단서를 끊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걱정이 따라붙었다.


그럼 나 정말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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