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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STA Mar 16. 2021

두 얼굴의 가해자?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세요?

사고 이후 가해자는 나에게 하루에 몇 번이고 연락을 했다. 문자와 전화로 나에게 계속 선처를 구했다.

그런데 사과문들을 보면 내가 겪고 들었던 것들과 전혀 다른,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 했듯 저렇게 딸이 아프다며 선처를 구했다. 그때는 솔직히 좀 알쏭달쏭했던 것 같다. 

'혹시 진짜로 아플 수도 있지 않을까?' 고급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딸이 아프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러면서도 다시 반대로 생각을 하게 된 건 내가 알기로 저 사진은 아마도 소두증 아이들이 수술하는 '신연기(伸延機)에 의한 두개골 확장술(이하 신연기 수술)' 인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가 있기 훨씬 전에 그 수술을 금지 한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에.


또한 나는 탁송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보통 탁송은 이렇게 차를 실어서 가져가는 것만 보았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드문드문 직접 탁송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새벽 4시에 일해서 옮겨줘야 할 차를 술을 먹고? 무슨 생각이었을까? 딸이 저렇게 아파서?




정말 끊임없이 끊임없이 시달렸다. 출근도 맘처럼 안돼서 속상해 죽겠는데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선처를 구했다. 한 편으로는 아 이 사람 혹시 처음이 아니진 않을까? 정말 노련하게 선처를 구하는 것 같고 별 의심이 다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사과를 하고는 있지만 거북했다. 왜인고 하니 나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이나 미안함은 잘 모르겠고 그저 자기 사정얘기를 반복해가면서 선처만 바랄 뿐, 그리고 내가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점을 이용해 계속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문자가 왔다. 기어이 나도 참을 수가 없어서 한마디 했다.


너무 지쳐서 보낸 답장(왼쪽)


한참 선처를 애원하던 사람은 기어이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며 희한한 아래의 사진을 보내왔다.


가해자의 말을 정리 해보자면 본인이 직접 몰고 가는 탁송 일을 하고 있었는데 딸이 아프고 속상한 일이 있어 사고 당일 술을 많이 마시고 집으로 가는 길에 사고를 냈다. 음주운전이라서 보험적용을 하려면 면책금을 400만원 내야 하고 그마저도 일을 못 하게 되어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라는 것.


나는 그 이후에 사고당일 내가 들은 고급 아파트 얘기를 드디어 꺼냈고 그사람은 거기에 사는 것은 맞지만 이혼한 지 얼마 안 되었고 딸을 혼자 키우고 있다. 여기서 가해자가 말하는 딸은 처음 사진에 있는 저 사진의 아이일 터. 그럼 또 여기서 의문을 가진다. 병원비가 없고 면책금이 없으면? 당연지사 집을 팔든 일단을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을 해야 하는데 고급아파트는 포기 못 하고 붕어빵을 판다라? 그리고 저 아이는 보다시피 잘 눕지도 않지도 못하는 아이를 혼자 키운다면서 그 새벽에 명품을 몸에 휘감고 벤츠를 '탁송'하는 아버지. 그럼 뭐 간병인이나 대체 양육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도대체 내가 이 글을 쓰면서도 뭐라고 하는지도 모를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이 사람과 연락을 하며 매일 병원비를 요구해야 하고 이 사람을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자신의 처지를 늘어놓으며 다른 말만 하는 상황이 지쳐 방법을 알아보던 중 '구상권 청구'라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구상권은 법률용어로서 타인의 채무를 대신해서 돈을 지급했을 경우, 대신 지급해 준 사람은 이 금액을 원래 채무자에게 변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즉, 내 보험사에서 병원비를 내주고 나중에 가해자에게 청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치료는 시작되었고 가해자와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즈음 에서 참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대학 때부터 만나 친오빠나 다름없는 사이로 지내는 오빠가 이 일에 분개하여 여기저기 파고들기 시작 한 것, 오빠가 사고 사진을 보며 사정 이야기를 듣더니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지역에 벤츠 이 버전 타는 사람 중에 이 타이어 휠 잘 없을 텐데?"

라며 갑자기 키워드 몇 글자와 인스타를 대조해가며 검색을 하더니 




사고당시 사진(왼쪽)                           사고당시 찍은 휠 사진(가운데)           오빠가 찾은 인스타그램 사진(오른쪽)


"야 이 사람이다"


오빠가 찾아낸 어떤 이의 인스타그램에는 핸드폰 가게를 운영하는 소위 '폰팔이' 라고 낮춰 부르는 사람이 벤츠를 옆에 두고 가게를 홍보하는 사진, 고급아파트 바로 옆 백화점에 영화를 보러 가는 사진, 아주 예쁜 부인과 건강하고 튼튼한 딸.


90%가 들어맞았다. 생긴 게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비슷한 체형에 문자에 쓰인 말투, 그리고 중요한 건 아이디가 이름이었는데 사고 당시 들었던 이름과 같았던 것


더욱더 재미있는 사실은 동생이 그 근방에서 치킨집을 하고 있었는데 가해자 전화번호로 주문내역을 검색하니 사고 이후 그 아파트로 치킨을 시켜 먹은 기록이 남은 것. 몇천 원이 아깝다는 사람이 인스타그램에는 호화로운 술상과 타투, 집 자랑, 예쁜 아이의 사진들. 


나는 더없이 허무했고, 오빠는 더 없이 분개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사고 이후 가해자의 피드에는 음식 먹은 것을 자랑하는데 구토감이 또 생겼다. 사람이 이렇게 추악할 있다니. 


오빠는 네가 착해서 온갖 걱정을 다 해서 그렇다며 이제는 몸만 생각하고 치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정신적 충격은 오히려 더 깊어진 듯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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