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준택 Spirit Care Aug 11. 2024

미리 치르는 장례식

대학시절 방송국 생활을 하면서 황병기 선생의 <미궁>을 처음 들었다. 기괴한 가야금 연주와 귀신 나올 듯한 여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무용가 홍신자라는 건 당시에 알지 못했다. <미궁>은 1975년 초연 당시, 관객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kJSOEI9l-Q&t=833s

미궁, 1996년 국악음반박물관 촬영본


홍신자를 다시 만난 건, 1993년 발간된 <자유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이었다. 늦은 나이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녀의 열정에 감탄하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때론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가진 것이 없기에 버릴 것도 없었지만 20대의 나는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녀의 삶은 자유를 향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나이 80이 되던 해인 2020년, 그녀는 제주 바다에서 자신의 장례식을 주제로 한 퍼퍼먼스를 펼쳤다. 


https://www.youtube.com/watch?v=tTjvJ0TIAGY

영상출처 : 커뮤니티 아트랩 코지




그녀의 인터뷰 중, 죽음학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는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한다. (인터뷰 출처 : 서울문화재단 웹진, 춤in)


"죽음이란 충분히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인데 왜 사람들은 죽음을 금기시하고 멀리하려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싶었죠"


""죽음과 내가 하나이며 다르지 않다", "죽음은 항상 나와 함께 있다”, “나는 죽음을 안고 있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죠. 전 어렸을 때부터 죽음과 줄곧 함께했던 것 같아요. 죽음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주제였고, 어떻게 해야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했죠. 그리고 결론을 내렸어요. 죽음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나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결국 삶의 끝까지 죽음과 함께하는 거예요"


"이번 <장례> 퍼포먼스를 끝내고 나니, 이것을 나 개인의 장례 행사로 끝내지 않고 계속 연결하여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년부터는 축제의 형태로 작업을 이어나갈 예정이에요. 대부분의 축제는 3~4일 정도만 하고 금세 끝나는데,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산만하게 난리 치다가 휙 끝나는 게 과연 축제일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적어도 한 달 동안 축제를 진행하려 해요. 여유 있게 자기 자신을 비우고 우리가 평생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을 돌이켜보는 거죠. 산다는 게 뭔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헐떡거리며 사느라 바쁜 삶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더 나아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으면 하고요.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인데, 다들 잊어버리고 등한시하며 살아가요. 그러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죠. 당장 내일 올 수도 있는 죽음에 우리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해요. 죽음은 그 누구도 준비시키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한 달씩 매년, 제주도에서 생활하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축제를 열고 싶어요. 여러 나라의 장례 행위 체험, 타 예술 장르와의 협업, 그리고 세미나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고요. 삶을 어떻게 대할 것이고 어떻게 죽음을 대할 것인지 확실히 정의 내리고 갈 수 있는 축제가 되었으면 해요."



20대에 읽었던 그녀의 책 <자유를 위한 변명>, 30대에 읽었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그리고 얼마 전 우연히 읽게 된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녀는 80대가 되었고 나는 50대가 되었다. (그녀의 나이는 살아계신 나의 어머니와 비슷하다) 자유를 향한 그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나에게 영감을 주고 자극제가 된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이렇게 30년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우연히 아닐지도 모르겠다. 


"작업에 있어서, 자신이 살아왔던 배경이 무엇이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고, 어떤 음식을 먹고 자랐고,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고, 작품의 뿌리가 되는 거죠. 저는 한국에서도 조금 특별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요. 충청도라는 산골 절벽에서 태어났고 6·25라는 가장 비극적인 시기에 태어났죠. 10살의 나이에 6·25의 모든 것을 경험했다는 건, 남은 생애와 연결이 안 될 수 없는 사건이에요. 정말 처참하고 치열했던 시절을 보냈기에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죠.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항상 죽음이라는 게 저를 편안하게 하지 못했고, 죽음이 지닌 질문을 풀어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었어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다른 친구들과 저의 고민을 나눌 수 없었고, 서로 이해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항상 마음속은 어두웠지만, 겉으로는 활발하고 명랑해 보이도록 애를 많이 썼어요."


나는 언제쯤 자유를 위한 변명을 할 수 있을까?  끝.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은 설명되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