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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Aug 10. 2024

죽음은 설명되어야 한다

죽음은 설명되어야 한다.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죽는다. 과거의 인간들도 그래왔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 죽음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또는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준비된 죽음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낯설고 힘겹고 고통스러울 수 있으되, 갑작스러운 죽음은 더욱 그렇다. 


죽음은 설명되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죽음. 그것은 특히나 설명이 필요하다. 이른 나이에 불치병 진단을  받으면 우리는 묻는다. "왜? 왜 나야?"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묻는다. "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그러나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다.


죽음은 설명되어야 한다.


"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위에서 얘기한 죽음의 대상자가 왜 나인지, 또는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미. 가족의 사고를 예로 들어보자. 갑작스레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면 현실이 아닌 듯 느껴진다. 슬픔이나 괴로움 이전에 그 죽음이 사실로 느껴지지 않는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죽음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른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가슴속에 또는 다른 어떤 모습으로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 살아가기도 한다. 


죽음은 설명되어야 한다.


두 번째 "왜"의 의미는 좀 다르다. 사고인 경우에 더욱 그렇다. 사고의 원인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그 죽음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더욱 강하고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고의 원인은 이러저러하다, 사고는 이런 이유로 발생했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사고 원인에 대한(죽음의 원인이 아니라 사고의 원인이다_죽음의 원인은 사고이다) 설명은 상실(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정하기 힘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이유도 모르는 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고의 유가족들은 사고 원인에 대한 설명을 원하는 것이다. "왜"에 대한 설명이 가능할 때 제대로 된 애도의 과정은 시작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상실과 애도를 말할 때 "죽음은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아기 때 "이게 뭐야?" 그리고 "왜?"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하는 존재이다. 설명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커 가면서 더 이상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된다. 설명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기도 하거니와 먹고살기 바빠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실존적인 상황 앞에서 "왜"라는 질문은 피할 수 없는 당연한 물음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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