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9. 버지니아 울프의 불안

부정적인 정서와 감정에 대하여

by 차준택 Spirit Care

바다는 울프에게 언제나 감정의 메타포였다. 부서지는 파도, 미끄러지는 물결, 예고 없이 밀려오는 고요함과 격랑.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파도처럼 밀려오는 생각의 흐름’이라 표현했고, 그 안에는 항상 불안이라는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울프의 하루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갈라졌다. 한순간은 세상의 질서를 완벽히 이해하는 듯한 맑음이었고, 다음 순간은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듯한 혼란이었다. 그녀는 일기장에 "나는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자주 알아차린다"라고 썼다. 그 알아차림이 바로, 불안의 본질이었다. 이유 없는 떨림이 아니라, 너무나 명확한 자각. 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실존의 감각.

디아워스 불안.JPG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그린 영화 <디 아워스, 2002년>의 한 장면


『댈러웨이 부인』에서 셉티머스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순간, 울프는 단지 한 인물의 죽음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안이 끝내 감당되지 못할 때, 인간이 얼마나 고요하고 단호하게 절망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자백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불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꺼내어 바라보았고, 단어로 묘사했고, 책으로 남겼다. 그녀에게 글쓰기란 불안의 물살을 견디기 위한 나룻배였고, 종이 위에 남은 흔적은 그 항해의 지도였다.


불안은 울프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동시에 그녀를 가장 정직한 언어로 이끌었다. 그녀의 글에는 우리가 말로 담지 못한 감정의 진실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울프가 바랐던 유일한 평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끝내 바다로 걸어 들어갔지만, 그녀의 파도는 아직도 페이지 위에서 조용히 출렁이고 있다.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8. 불안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