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바라보는 가장 고요한 방식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작은 섬.
하얀 관을 실은 조각배.
서늘한 침묵과 묵직한 고요.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의 대표작 <죽음의 섬>은 죽음을 공포가 아니라 고요와 귀환으로 그린 작품이다. 서양 미술사 속에서 죽음을 다룬 그림은 많지만 이만큼 말없이 우리를 붙잡아 두는 그림은 드물다.
뵈클린은 이 그림을 1880년대에 총 다섯 버전으로 그렸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작은 배, 관, 그리고 하얀 옷을 입은 인물이다. 그들은 어둠 속을 묵묵히 건너 섬이라는 목적지로 향한다.
이 섬은 마치 육지와 바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경계 공간처럼 보인다.
삶의 소음이 멀어지고 마지막 숨이 가라앉은 바로 그 순간,
뵈클린은 죽음을 ‘사라짐’이 아니라 이동, 다른 공간으로의 도착으로 표현한다.
섬을 가만히 보면 울창한 나무가 병풍처럼 서 있고, 그 사이로 고대 석관들이 벽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 분위기는 차갑지 않다.
대신, 마치 오래 기다려온 집에 돌아온 듯한 포근한 정적이 있다.
죽음이란, 공포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쉼이 될 수 있다는 뵈클린의 조용한 메시지 같다.
<죽음의 섬>은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여러 음악가와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는 이 그림을 보고 교향시 〈죽음의 섬〉(The Isle of the Dead)을 작곡했다.
이 그림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죽음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또 잔혹하게 그리지도 않으며,
단지 사람들이 오래도록 품어온 죽음에 대한 근원적 불안을
정적인 이미지로 묵묵히 감싸 안기 때문이다.
죽음을 ‘끝’이라고만 여겼던 사람들에게 이 그림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죽음은 정말 끝일까?
혹은 우리가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여정일까?
뵈클린이 그린 섬은 낯설지만 어쩐지 친근하고, 어두운 색조지만 깊이 있는 평온이 흐른다. 그 조화는 결국 죽음이 삶의 일부이자 또 다른 형태의 귀환임을 은유한다.
우리는 죽음을 말하는 것을 여전히 어려워한다.
하지만 웰다잉, 죽음준비교육이 강조하는 것도 바로 죽음을 직면해야 비로소 삶이 환해진다는 점이다.
뵈클린의 〈죽음의 섬〉은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라, 누구나 도착해야 할 조용한 항구다”
그 항구를 바라보는 마음이 부드러워질수록,
지금 이 순간의 삶은 더 뚜렷하게 빛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bbtmskCRUY&list=RDdbbtmskCRUY&start_radio=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