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7. 21 첫 번째 감상
퍼펙트 데이즈 (2023)
감독: 빔 벤더스
출연: 야쿠쇼 코지
상영 시간: 124분
SNS를 떠돌다 "퍼펙트 데이즈" 라는 제목을 가진 푸른 색감의 포스터와 그 안의 한 남자를 지나쳤다.
명확히 말하기 어려운 이유와 함께 봐야겠다, 라는 다짐을 했고 몇 달 정도 국내개봉을 기다린 끝에 명동의 영화관을 향했다.
계획이 없는 저녁, 낮에 만났던 이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중에 영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영화, 인생 영화 등등.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눈 덕에 기분도 둥실둥실 좋아진 상태였고 마침 다음 날이 월요일이었기에 한 주를 시작하기 전의 늦은 일요일 밤에 딱 좋은 영화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늘 영화를 보면 기록해야겠다는 계획만 갖고 결국 미루고 미루다 잊고 마는데 오랜만에 보고 난 후 바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다짐을 지키게 한 영화이다.
다음 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어느 쌀쌀한 저녁을 맞게 된다면 Feeling Good을 들어 보자. 가사도 곱씹어본다면 더 좋겠다.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
I'm feeling good
1. 야쿠쇼 코지
영화를 감상하기 직전에 주연인 야쿠소 코지가 이 영화로 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기대는 한껏 올랐다. 그럼에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연기였다.
영화의 초반이 지날 때쯤 주인공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점을 깨닫고 고민하다 멋진 세계와 같은 배우일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었다. 정보를 확인하며 함께 알게 된 것은 갈증의 포스터에 있는 인물도 같은 배우였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 낮에 나누었던 대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영화가 무엇이었냐는 질문도 있었는데 그때 바로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멋진 세계도 참 충격을 많이 받은 영화였다. 잔잔한 영화지만 몰입해서 보았고, 다 보고 나서는 멍해졌던 기분이 생생하다.
갈증도 호불호가 참 많이 갈리지만 난 싫지 않았던 영화로 기억한다. 본지 오래 되었지만 막상 다시 볼 자신은 없다...
2. 엔딩 장면
기억에 남는 엔딩 장면이라면 역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후로 기억에 남는 엔딩 장면으로 이 영화의 마지막을 추가하게 되었다. 중간까지는 남우주연상? 하는 의아함이 조금 있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속으로 박수 치며 그냥 상 10개 드렸다.
배경으로 깔리는 feeling good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노래였다. 자주 듣던 노래가 나오면 어색하거나 장면의 감정이 퇴색될 수도 있게 하는데, 오히려 그런 노래이기 때문에 그 표정과 상황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했다. 눈물 흘리는 제법 인생을 오래 산 남성과 그에 대비되는 가사인 "I'm feeling good", 그리고 이어서 귀를 가득 채우는 악기들의 소리까지.
그리고 나서 영화가 탁 끝나며 힘이 빠진 후, 크레딧과 함께 피아노곡이 흐른다. 크레딧을 다 보지 않고 나가는 사람도 잠시 그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앉아있게 한다.
3. 울었나요?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흐를 것처럼 숨이 조금 차며 코끝이 찡해질 때, 를 나는 울었다고 표현한다. 주룩주룩 흘렀던 영화는 가버나움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가버나움도 한 번씩 봐 주시면 좋겠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는 울고 싶었던 장면이 두 장면 있었다. 첫번째는 동생을 만나던 장면. 가족은 어쩔 수 없는 눈물 기폭제다. 그 가족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조카와 삼촌이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오랜만에 오빠가 동생을 만나는 장면만 보았을 뿐임에도... 두 번째는 당연히 앞에서 열심히 말한 엔딩 장면이다. 그 장면만을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여러 번 더 보고 싶다. 한 번쯤은 눈물이 더 주룩주룩 흐를까?
4. 다른 배우들
일본 컨텐츠를 조금 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얼굴이 여럿 나왔다
먼저 분량이 가장 많은 에모토 토키오. 협반-남자의 밥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기억에 잘 남는 얼굴과 연기톤이기도 하다.
그리고 야마다 아오이. 프로필도 안 떠서 뭐지 했는데 원래 댄서였다!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에서도 댄서로 나왔는데 아주 비슷한 느낌으로 나왔다 그런 느낌을 표현하기에 최적의 비주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우라 토모카즈. 최근에 보았던 태풍 클럽에서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았어서 정말 못 알아볼 뻔 했다. 한 달 사이에 40년 사이의 모습을 보다니 묘한 기분이었다.
5. 내용
예상했던 내용이었는데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게 잘 풀어냈다. 여러 인물이 다양하게 접하고 있었고, 마치 내가 그들 각각을 마주하는 것처럼 각 인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공원 벤치의 여자가 중요한 인물일 줄 알았는데 그러고보니 별 일이 없었다. 그것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밤마다 꿈의 장면을 보여주는데, 그때마다 마치 내가 주인공과 함께 하루를 끝낸 기분이라 나도 함께 자야 할 것 같았다. 잠이 들 것 같을 때쯤 현실로 돌아왔다.
꿈이 나올 때마다 또 하루를 함께 보냈구나, 하고 생각했다.
제목이 퍼펙트 데이가 아니라 복수형인 것도 좋았다. 완벽한 날들. 어느 하루의 완벽한 날은 사실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해가 좀 안 되는 몇 장면도 있었지만... 그래서 올해 가장 좋은 영화는 되지 못했다. 아직 2024 최고의 영화는 라이즈. 언젠가 다시 꼭 개봉해 주었으면 좋겠다. 구매해서 더 자주 보고 싶은 영화니 추천한다.
6. 좋았던 장면
매일 아침 미소짓는 장면
다카시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여러 번 웃는 장면
찍힌 사진의 모습을 바로 보여주는 장면
블루자이언트의 다리 밑이 생각나는 공간
책을 읽다 잠이 와 몇번을 얼굴에 떨어뜨리려 하는 장면 (나같다)
0. 마무리
다양한 일이 일어나고, 다양한 사람이 스쳐간다.
일상의 일부가 되었던 사람이 떠나가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특정 장소에 있던 사람이 다른 장소에 등장하기도 한다.
자신의 하루를 매일 반가운 듯 꾸려 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다는 것을 다시 알게 해 준 영화였다.
언제든 웃는 사람은 울음이 마음 속에 가득 찰랑찰랑 차서 얕은 웃음을 꺼내기 더 쉬운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걸 조금이라도 벗겨내고 나면..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