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말기암환자가 되면 담당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앞으로 남은 시간, 기대 수명을 받는다. 실제로는 예측이 매우 어렵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신기하게도 그 날짜는 얼추 비슷하다고 한다. 받은 여명이 육 개월이면 육 개월 정도, 삼 개월이면 삼 개월 정도 더 살다 돌아가신다는 거다. 환자에게 이 기간은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니 매우 중요하다.
최근 나의 경우를 살펴보면...
주치의 선생님께 물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요…?!’ 나의 주치의 선생님은 매우 쿨~ 하시다. 놀랍게도 선생님은 이미 그 일반적인 시간이 다 지났는데 살고 있는 거라고 하셨다. 그저 보너스 인생을 살고 있는 거라고… 다발성 전이를 기준으로 해도 한참을 더 살았다. 그래서 대학병원에서의 전이로 인한 척추암 실사례를 바탕으로 한 논문을 찾아봐도 분명 걷지 못하게 된 때로부터 미니멈 1개월을 살다가신 분부터 맥시멈 8개월을 살다가신 분까지 계셨는데, 나는 벌써 10개월이나 지났는데… 살아 있다.
나눌 것은 다 나누고 버릴 것 다 버려서 거의 가진 것 없는 이가 되었고(원래 가진 게 많은 사람도 아니었지만…), 내게 주어진 숙제로 여겨졌던 책도 냈고, 닭살스러워 못하던 사랑 한단 말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넘치게 표현했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 살아있는 걸까… 용서할 사람 용서했고, 기억하는 잘못으로 용서구할 이들에게 용서 구했다. 능력이 허락하는 한 하고 싶은 일 다 했고, 더 이상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누군가에겐 뛸 듯이 기쁠 보너스 인생일 텐데… 나는 너무 고단하고 구차하고 지친다. 이렇게까지 아프고 고통스런 기적을 원한 적이 없었다… 매일 고통과 두려움없는 존엄한 죽음을 기도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