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1
‘빵점’
지난주 이번 주 나의 멘탈은 산산이 부서졌다. 지난 삼 개월 동안의 치료의 성적표를 받았다. 경험상 늘 열공은 성적표를 배신하지 않았기에 나름 기대를 했었다. 이번엔 정말이지 약을 단 하루도 빼먹은 적이 없고, 혹시나 해서 시간도 꼬박꼬박 맞춰서 먹었다. 굵은 바늘의 맞기 싫은 주사도 눈 딱 감고 괜찮다며 즐거운 상상 하며 맞았다. 의사 선생님이 하라시던 긍정적인 생각도 무지 많이 했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하라고 하면 사랑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든 치료를 삼 개월이나 했는데, 왜 암은 훨씬 커지고, 왜 고통도 늘었을까? 분명 겨울까지는 누워있던 나이고, 지금은 봄이고 걷는 나인데, 결과는 왜 이렇게도 처참한 걸까…. 사실 지난주부터 왼쪽만 아프던 것이 오른쪽도 아팠기에 어쩌면 결과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인간의 희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절한지 인터넷 상의 그 수많은 글 중에 단 한 줄 “통증과 병의 상태는 다를 수도 있어요.” 하는 한 문장에 의지해 버텼다.
백점은 아니더라도, 멋진 성적표를 들고 누군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나 이제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다고 자랑을 해볼까? 힘껏 몸을 날려서 안겨볼까? 머리를 쓰담쓰담 칭찬을 받아볼까? 그동안 내가 잘못한 것들 용서를 해달라고 할까? 다음 결과는 더 좋을 거라고 배짱을 부려볼까?
까만 모니터를 보면서 알았다. 누군가에게 달려갈 수 없다는 것을...
“선생님, 더 이상 치료받지 않을래요. 그동안 치료가 정말 많이 힘들었거든요. 열심히 치료를 했는데, 결과가 더 나쁘다면 치료받을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 다른 의사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시키는 대로 안 할 거면 다른 의사한테 가라고 그랬었는데, 이번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그저 민경 씨가 아까워서 그래요...”
선생님이 언제든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권하지 않는다고. 결과를 말해주는 선생님의 마음도 참 힘들 것 같다. 결과를 받기 전까지 나의 눈은 반짝였는데 선생님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결국 선생님은 내 눈을 맞추지 못했고, 나는 선생님이 미안하실 일이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진료실을 나왔다. 이제 치료는 끝. 도비는 자유예요!!!
그제는 마음이 패륜아가 되었다. 세상에 소리치고,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혼자 욕하는 것, 엉엉 우는 것 정도지만 말이다.
어제는 dosii의 반향이라는 앨범을 만났다. 같은 노래도 누가 불렀는지에 따라 이렇게 다르구나... dosii는 몽환적이다. 온몸이 우웅 우웅 울린다. 고작 다섯 곡에 이십 분 정도의 앨범이었는데, 첫곡을 넘기지 못했다. ‘더 이상 내게 슬픔을 남기지 마.’ 공원을 걸으면서 어어엉어엉 소리 내어 울었다. 추운데 피곤하기까지 했다. 뭘 잘 안 잃어버리는 내가, 울며 걷다가 케임브리지에서 사 온 큰 별 귀걸이를 떨어뜨렸다. 마지막까지도 버리지 못했던 세 개 중에 하나였는데… 아ㅆㅂ 진짜 여러 번 ㅈ같네. ㅋㅋㅋ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쓴다는 건 매우 위험하다. 미친 X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내 안에 고통과 슬픔이 가득 찼을 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 역시 위험하다. 유명한 분이 사랑이 아니면 말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분명 사랑이 아닌 고통과 슬픔, 날카로움을 건넬 것이기 때문에.
자… 이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의 인생에 평범한 순간이 있었던가… 그래, 평범한 도전을 한 기억이 없다. 늘 치열했고, 늘 절실했다.
이제 내게 남은 사랑을 대방출하려고 한다.
아껴왔던 “사랑한다.”는 말 같은 거 남발하려고 한다.
나에게 무언가 남은 것이 있다면 필요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다.
예전에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선택들을 하고, 아주 더 많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야겠다.
아주 지멋대로 살아봐야 겠다.
사랑하는 여러분,
달려가세요.
사랑하세요.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저처럼 되기 전에 말이죠.
어느 봄날 악착같이 걷던 나의 셀카 하나 남김. 안녕, 보고 싶은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