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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Haru Aug 22. 2021

노부부

함께 나이들어 간다는 것에 대하여

대형 병원에서의 예약 시간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진료 예약시간 2시간 전, 채혈이라는 원칙이 있다. 그 결과를 가지고, 진료실 앞에서 다시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린다. 채혈실에서의 기다림까지 더하면 서너 시간쯤은 투자할 각오를 해야 한다. 8번째의 방문으로 처음의 서툼과 어색함은 사라지고 어느 정도의 익숙함을 장착한 나는, 이 정도 기다림 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내공까지 가지게 되었다.

절뚝거리는 한쪽 다리가, 걷는 모습이 많이 불편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진료 중에 문을 열지 마세요-란 문구가 붙어 있는 진료실 문을 차례대로 열고 닫기를 반복한다. 어디를 다녀오신 동안 일행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다급한 얼굴 표정과는 다르게 손잡이를 꼭 쥔 두 손이 충분히 조심스러워 보였다. 3번째 문을 열고서야 부끄러운 듯 안심이 된 얼굴로 들어가셨다. 찾았나 보네라는 말소리와 모아졌던 사람들의 시선들이 흩어졌다. 나만 본 것이 아니었나 보다.

다시 진료실 문이 열리고 할머니(아내)의 손을 꼭 잡고 나오신 할아버지는 구석 의자에 할머니를 먼저 앉힌 다음에, 다리가 불편한 본인이 앉았다. 초록색 동네 마트 로고가 찍힌 허름한 하얀 봉지에서 꺼낸 반찬통을 두 분 사이에 두고 챙겨 온 많은 간식거리(사과, 떡, 고구마가 마구 담겨 있다)를 나누어 먹으면서 묻고 대답하기를 한참. 할머니가 화장실을 간다며 일어나고, 할아버지가 다시 자리를 정리하고 비닐봉지를 들고 불편한 다리로 할머니 뒤를 따라갔다. 조용한 대기실에 할아버지의 걸음걸음마다 슬리퍼를 신고 다리를 내딛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봉지 소리보다 내 눈길을 더 끈 것은 할아버지의 옷차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옷차림 역시 구겨진 비닐봉지와 닮아 있었다. 좋은 시설을 자랑해 마지않는 이 병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패션에 ‘문외한’이라는 평을 듣는 내가, 그래서 타인의 옷차림을 절대 평가하면 생각하는 내가 보기에도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곳은 다시 2시간 후인 항암주사실. 외래 항암 치료(채혈-대기-진료-대가-항암주사)는 병원에서 하루를 보낼 각오를 해야 할 만큼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이다. 침대에 누워 환자가 항암제를 맞는 동안 보호자는 또 기다린다. 할아버지는 지쳐 보이는 아내에게 아프진 않냐? 추우면 이불을 얻어주랴?... 기색을 살피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슬픔도 아니었다. 좋은 시간도 힘든 시간도 함께 버텨낸 전우에 대한 애틋함이라고 해야 할까.

진료실 손잡이를 잡은 조심스러운 손, 다 구겨진 비닐봉지에 담겨있던 간식, 이미 장성한 아들이 입었던 것일까 싶을 만큼 낡은 운동 바지와 삼선 슬리퍼, 까맣게 그을리고 깊게 파인 주름진 얼굴과 앙상하게 마른 몸이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 이 어색함을 잊게 해주는 것은 서로뿐이라는 듯 의지한 모습이었다.
얼른 병원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우리 집에 가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의지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모습 같았다. 당신을 위해 이 낯 섬을 내가 견딜 수 있고, 당신의 기다리고 있으니 나 역시 든든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과 느낌일 뿐이다. 실제로는 검소할 뿐, 자수성가한 상당한 재력가일 수도 있다. 겉모습만을 보고 만들어낸 선입견 가득한 나의 드라마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충분했고, 계속 같은 공간에 있던 내가 속된 말로 ‘소설을 쓴’ 것일 수도 있다.

나의 나이 든 모습은 어떠할까,

나의 곁에는 누가 남아있을까,

내 손등을 조심스럽게 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과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내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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