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싶은 사람이 있다. 그녀는 결혼 직후 3년을 제외한 25년을 시댁 어른들과 함께 살고 있다. 예전엔 상황에 맞춰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쉽지 않은 일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그녀의 태도를 닮고 싶다. 치매어른의 난감한 에피소드, 자녀에 대한 아쉬움과 푸념, 배우자에 대한 험담도 그녀가 이야기를 하면 불평불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저 생활 중에 일어날 수 있는 가벼운 ‘일화’로 들린다. 그 역시 능력일 것이다. 그렇다고 꾸미거나 감해서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내가 같은 일을 겪는다면 그녀와 같은 감정의 정도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같은 상황이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힘듦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하늘이 무너질 것 같기도,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긴 인생을 살면서 매번 기질 탓만을 하면서 먹구름을 머리에 띄우고 다닐 수만은 없으니, 개인마다 이런저런 노력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언니는 그 많은 일을 하면서 기분이 가라앉지 않냐?”
“나는 모든 역할을 60점만 맞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한다"
다 잘하려고 하니까, 힘들고 우울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본인은 그런 역량도 안 될뿐더러, 그 정도만 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도 편안해한다는 것이다. 80점 100점을 맞으려고 애를 쓰고 무리를 하면 꼭 짜증을 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니, 아내도, 엄마도, 며느리도 60점만 받는다 생각하니, 집안 분위기도 좋고 본인도 행복하더란다. 성인이 된 세 아이 모두에게 친구 같은 엄마다. 그렇다고 게으른 사람은 절대 아니다. 5시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30분 하고, 집안을 다 해두고, 집으로 오는 간병 도우미 분이 오시는 일주일에 몇 번은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머님께 죄송한 대신 나머지 시간에 더 좋은 기분으로 최선을 다해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본인 쇼핑을 즐기고 가족들에게 선물도 한 면 기분이 그렇게 좋단다.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지만 비싼 물건은 장바구니에 담아뒀다가 생일 찬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그녀는 자기 욕구와 생활을 적절히 조절해서 적당히 하는 것이 롱런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나의 생활의 멘토로 삼고 싶을 정도다. 남들이 하나같이 ‘착한 사람 콤플렉스’나 ‘까바병(서운해할까 봐, 무심하다고 욕할까 봐, 없어서 당황할까 봐 지레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증상)’에 걸려 곤란한 상황을 사전에 차단해 놓으려고-심지어 가족들의 일까지 도맡아서 하려고 하는 나에게 꼭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예스맨’이었던 나는, 어느 순간 본전 생각이 나는 속 좁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힘들면 하고 싶지 않으면 NO라고 말하면 될 것을, 내가 좋은 사람 80점 100점이 되고 싶어서 그 말을 스스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의 말처럼 60점만 하자 마음먹고, 장 보러 가기 싫어 대파 없이 찌개를 끓였다. 다리가 아파서 못 가겠다며 샘플 화장품으로 하루를 해결하라는 말을 했다. 일 몇 가지를 하지 않았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 나는 ‘말도 덜하고, 일도 덜하고, 짜증도 덜 내고’를 되뇐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고,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던가. 무조건 오래 생각하고 많은 것이 넘치는 정성이 반드시 좋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신중함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에 따라 그 기질에 따라 상황에 따라 때로는 적당한 가벼움이, 때로는 넘치는 세세함이 필요함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