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
내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을 그런 날
어느 :
1. 여럿 가운데 대상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을 때 쓰는 말
2. 정확히 모르거나 분명하게 말할 필요가 없는 대상을 이를 때 쓰는 말
3.‘만큼’, 따위의 명사와 쓰여, 정도나 수량을 묻거나 어떤 정도나 얼마만큼의 수량 막 연하게 이를 때 쓰는 말
‘어느 멋진 날’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어느’의 말뜻의 찾아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두 번째 의미인 듯하다. 단어와 함께 사용할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어느’를 떼어놓고 보니 글자의 모양은 조금 엉성해 보인다. 맞춤법이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단어의 ‘정확히 모르거나 분명하게 말할 필요 없는’에 너무 비중을 두어 그 단어를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 탓일 수도 있다. 분명하고 명확할 것, 정확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에 맞춰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은 부담과 가만히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진다는 불안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다. 그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하면서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 대범함은 갖지 못했다.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내게 강제하는 바가 없으니 자유로울 수 있으며, 정확히 몰라도 될 것 같은 애매모호성이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내게 느껴지는 ‘어느’는 연약한 단어이다. 그 연약함은 약해서 아픈 것이 아니라 따스하게 산들거리는 봄바람의 설렘 같은 의미이다. 그런 나에게 ‘어느 멋진 날’은 불안할 것도 없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 당당하고 행복했던 과거 어느 시절의 나를 생각나게 하는 말인 것 같다. 미련 가득한 과거의 어느 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을 거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한 날도 아니었을 거다. 그냥 일상을 마음을 다해(집중해서) 보냈던 그런 날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상이 선정되는 기준은 경험을 통한 좋은 기억이나 그 순간의 느낌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말처럼 아무 이유 없이 ‘그냥’이라는 설명 불가능한 feel의 영역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전자의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초밥은 싫어하고 튀김만 먹는 아이는 회전 초밥집에 가는 것을 열광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가 기분이 좋은 날은 꼭 둘이서 갔었다고 한다. 엄마의 기분 좋은 모습이 회전 초밥과 연관되어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기억나지 않는 나의 어느 멋진 하루가 아이에게도 그런한 날이었음에 감사한다.
그런 일상을 ‘어느 멋진 날’로 기억하는 나는, 왜 지금의 일상을 멋진 날도 만들지 못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그런 이유쯤이야 앉은자리서 A4 용지 한 장쯤은 쉽게 적을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적힌 이유가 나를 위한 그럴듯한 변명이며 세상을 향한 불평불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오만하고 편협한 내가 멋지지 않음을 안다.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어느 멋진 날’을 기대하는 염치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 오늘은 그 사실을-마음을 인정했으니, 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늘 알고 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니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지만, 늘 여기까지다.
미래의 내가 오늘을 ‘어느 멋진 날’로 떠올릴 수 있는 일상이 되기를, 또 다른 '어느 멋진 날'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