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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Haru Sep 14. 2021

목소리가 주는 매력

편안함 & 다정함

20대 초반에 백화점 세일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서울 본사에서 파견을 나온 40대 후반의 사장님이 있었다. 티브이나 거리에서 흘러가는 말이 아닌, 실제로 서울말도 대화를 해 본 경험이었다. 얼마나 듣기가 좋던지 ‘저렇게 말하면 거짓말이라도 다 홀랑 넘어가겠다’면서 우리끼리 주접을 떨어댄 기억이 있다.


목소리에 대한 속설이 있다.

‘전화 목소리가 좋은 사람은 만나보면 얼굴을 못생겼다’

이건 분명히 목소리 좋은 사람에게 페널티를 당한 사람들이 퍼트린 음모론일 수도 있다. 목소리를 듣고 기대에 못 미쳐 실망감에 나온 말일 수도 있다. 경험상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도 하다.


나를 포함한 나와 생활권이 겹지는 모든 사람은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소리의 크기와 억양이 센 탓에 다른 지역 사람들이 보면 ‘싸우는 줄 알았다’라는 오해는 익숙하다. 그런 생활권을 가진 나는 목소리가 좋은 사람에게 후한 편이다.

나이가 들면서는 ‘목소리가 좋다’라는 의미보다는 ‘말하는 태도’에 집중하게 되었다. 유창하거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말을 들어가며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태도를 동경한다. 하지만, 이럴 때 역시 귀로 들리는 목소리 톤과 억양은 어쩔 수 없이 한몫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작정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면 카페를 찾는다.

서울에 거주하다 보니, 어린시절 친구들과 발을 동동거리며 호들갑을  떨던 서울말은 아니지만, 귀가 열리는 순간이 있다. 듣고 싶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가 들린다. 내 일에 집중을 하면 대화의 내용을 다 들을 수는 없지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분위기가 전달된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대화를 이어지는 것을 듣다 보면, 고개를 들어 어딘지를 찾아보게 된다. 좋은 목소리로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싶은 마음에 실례일 것 같지만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쉽게도 9할은 속설의 증명이다.

듣는 것으로 마음에 차올랐던 기대감에 반드시 부응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편안한 기분 좋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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