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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Haru Aug 30. 2021

뭘 감추고 싶은 거니

넘쳐나는 말속에 쓸말이 없다

[수다스러운 사람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 자신에 대하여 끊임없이 수다를 떨지 않고는 견실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의 본성, 본심, 정체에 대하여 숨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들보다 말이 많다. 여러 사소한 정보를 주는 것으로 상대의 주의와 의식을 다른 곳으로 쏠리도록 하고, 밝혀지기 두려워 숨기는 것에는 시선이 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 도서 ‘니체의 말’ 中에서]


언젠가부터 누군가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같은 생각을 한다. 내가 말실수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대화의 내용을 곱씹어 본다. 많은 말을 했으니,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말 중에 실수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나 하는 하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말을 줄여야 한다는 반성을 한다. 그게 안된다면 당분간 사람 만나는 것을 자제해야 하는 마음에 심각해진다.


내가 한 말의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본다. 정체를 숨기기 위한 거짓말을 아닐지 모르지만, 상대가 (내가) 감추고 싶은 부족함, 가벼움을 눈치챌까 봐 그럴듯한 말로 꾸미고, 내가 어디서 들었음직한 말을 보태어 정보를 전달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근사한 일은 ‘내가 아는 누구~’로 시작해서 ‘그런가 보더라’라며 나도 살짝 부럽지만 내가 그런 사람도 알고 있는 사람임을 과시한다. 예전엔 나를 드러내고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은, 민망하고 어려워하는 다수를 위한 나의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끊어지는 것이 어색하고, 이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할 거냐는 마음으로 그런 분위기를 못 버티는 힘이 부족한 내가, 적당한 화두를 던져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그랬을 거다.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은 내 모습이 그런 건 아니더라. 대화의 7할은 상대기 궁금해하지 않은 내 사적인 이야기를 한다. 상대도 듣느라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든다. 입이 마르도록 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푸념과 불만을 이야기 하지만, 상대에게 너무 얕잡아 보이지 않도록 잘 나가던 왕년의 내 모습도 끼워 넣는 수준 낮은 스킬도 발휘한다. 그러다 간혹 어릴 때 공부 못한 사람이 어디 있냐며 절대 모르는 척 넘어가는 법이 정공법을 구사하는 상대를 만나면 얼굴을 붉힐 일이지만, 웃으며 자연스럽게 넘어가지만 그 순간이 마음에 씁쓸하게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말을 많이 하면 쓸 말이 없다고 한다. 말이 많으면 그중에 실속 있는 말은 적을 수 있으니, 할 말만 신중하게 하라는 뜻일 것이다. 남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나를 감추기 위한 말이라는 첫 문단의 내용이 맞는 거 같다. 나를 이해받기 위한 넋두리로 시작하지만, 나의 전부를 보이진 않는다.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거란 마음에 나에게 유리한 부분만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많은 말로 나를 꾸미는 사이에, 나조차도 정말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혼란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묵언수행이 왜 있는지 알 것도 같다. 말을 많이 할수록(글 역시 마찬가지) 갖가지 미사여구로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 나의 모습이 옅어짐을 느낀다. 꼭 필요한 말만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중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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