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콘, 어떻게 드세요?
정녕 우아하게 먹을 수는 없단 말인가
카페에서 스콘을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정녕 우아하게 먹을 수는 없단 말인가.
카페에서 노트북을 열고 시간을 보내는 호사스러움을 좋아한다. 형편(주머니 사정은 늘 비슷하니 마음의 여유가 문제다)이 좋을 때는 알만한 체인점의 커피를, 그렇지 못할 때는 동네의 작은 카페를 이용한다. 계산대 옆에 진열된 디저트들은 눈에만 담는다. 배고픔이 아니라, 기분을 내기 위한 용도로 이용하지만 내 처지를 망각하는 일처럼 느껴져 브레이크가 걸려버린다.
음료만 마시는 일이 많지만, 가끔은 예쁜 접시에 세팅된 디저트가 주는 사치를 누란다. 그럴 때면 나는 스콘을 주문한다. 가격도 칼로리도 과하지 않다는 생각에 맛보다는 ‘적당함’에 비중을 둔다. 물론 그 담백한 맛이 좋기도 하다.
크림과 초코가 듬뿍 올라간 케이크처럼 외형이 화려하지도 않다. 샌드위치가 주는 도시적인 느낌도 없다. 다소 투박하고 단정해 보이는 모습이 과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좋다. 자극적인 맛이라고는 전혀 없는 탓에 달달한 것을 먹었을 때 느낄 수 있다는 위로도 없다. 그저 우직한 모양이 주는 든든함과 소박함이 있다.
불행히도 그는 외형과 속이 너무 다른 존재다. 먹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잘 쪼갤 수 있을까 이리저리 궁리해 보아도 당황스러움을 면치 못한다. 단단해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포크(나이프)를 대는 순간 허무하게 부서져버린다. 역시다. 큰 덩어리들을 골라서 먹지만 주위에 떨어져 나와 버린 가루들은 처치 곤란이다. 접시 위는 이미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트레이를 반납할 때는 처음과 다르게 그렇게 소심해질 수가 없다. 누가 봐도 ‘열심히 (흘리고) 먹었소’를 시전하고 있으니 어린 아르바이트생을 보기에 민망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럴 줄 알고 스콘을 잘 안 먹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