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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Haru Nov 28. 2021

나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사람이다

가격을 매기는 요인들

6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추워지기 시작하니, 해도 게으름을 피운다. 그의 게으름은 내게도 전염이 되었다.

일어나는 것이 점점 힘들고 번거롭게 여겨진다. 이 순간이 되면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왜 이 일을 굳이 하고 있는가’     


나는 10평이 안 되는 원룸에 살고 있다.

학업 성취도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고3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딸을 위해 온전히 공간을 제공해야 하는 시간은 등교 준비 시간이다. 전날의 피로는 덜고,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할 아침에 그녀의 예민함은 절정에 이른다. 편하게 준비하라는 배려임과 동시에 외면하고 싶은 나의 의지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까페도 없다. 공원에서 산책을, 편의점 파라솔 아래서 시간을 보낸다. 비가 오거나 추운 날씨에는 이마저도 곤란하다. 24시간 빨래방에 머물러 보기도 했지만, cctv의 눈초리에 뒤통수가 괜히 따갑다.      




오픈 준비 청소 알바

6:30-7:30 1시간의 시급 9500원

이동 소요시간 5분 내외     


코로나 4단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그렇게 찰떡이라 좋아하던 알바가 이제는 짐스럽기만 하다. 한 시간을 위해 고된 몸을 해도 뜨지 않은 추운 새벽에 일으키는 것이 너무 어렵다. 깨지 않고 자고 일어나면 몸이 더 가벼울 것 같기도, 물류센터의 일을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쪽 시급이 더 쎄다. 물론 일도 더 힘들지만, 이른 기상의 수고스러움을 생각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밤 10시에 물류센터의 일의 끝난다. 연장이 있는 날의 귀가는 자정을 넘긴다. 마음의 게으름보다는 몸의 고단함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 “천근만근”의 의미를 몸소 깨닫는 중이다.

물류센터의 일이 많아진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새벽의 기상이 짐스러워졌다. 배은망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시간의 일을 위한 힘든 기상보다 힘을 비축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인 것을 안다. 그럼에도 12월까지 하기로 한 면접에서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젋은 사장을 향한 나이 많은 알바생의 알량한 자존심일지도 모른다. 그저 가볍고 무책임한 어른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고집일지도.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에게 기억되지도 않은 무의미한 감정 소모일 뿐인데, 포기 선언을 하는 것이 어렵다.      


나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현명하게 삶을 사는 사람들 중엔 중요한 경중을 따져가며 실속을 챙길수도 있는 일을, 내가 가진 틀과 가치는 이런 것인지도.



매일 아침, 이 생각을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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