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돌아보면, 아무래도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치료사에 대한 꿈을 키워주고, 치료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배우고, 치료사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 및 성품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치료사 자격을 인정받아 치료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나는 밴쿠버, 캐나다에 위치한 Simon Fraser University에서운동학을 전공하여, 이과계열 학사학위인 BSc. Kinesiology를 취득하였고 이후 자격심사를 통해 B.C.주 Kinesiologist로 등록이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치료사의 길로 들어선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도 여러 스포츠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도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을 가르치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 학부 때부터 트레이너를 시작으로, 졸업 후 Steve Nash Fitness World라는 대형 피트니스 센터에서 먼저 운동전문가로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Kinesiologist였기 때문에, 그곳에서도 재활을 필요로 하는 인원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일을 하던 중 그들을 통해 큰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그들의 삶의 회복과 감사에 감동을 받아, 본격적으로 치료사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운동치료사로서 캐나다에서 가장 큰 사설 의료기관인 Lifemark에 속한 클리닉에 취직하였고, 내가 일했던 클리닉은 밴쿠버 다운타운에 위치하여 있었다. 여기서의 나의 근무시간은 08:00-16:00.내가 일했던 곳은 조금은 특수한 환경이었는데, Head Injury Assessment and Treatment Service (HIATS)라고 불리는 팀이었다. 이 팀은 다양한 의료 및 보건 전문가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고 있던 Multidisciplinary Team이었고, 주로 머리에 외상을 입은 환자들에게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이었다. 팀 구성원으로는 팀닥터, 2명의 물리치료사 (PT), 3명의 작업치료사 (OT), 2명의 운동치료사 (Kin), 2명의 임상 상담사 (CC), 임상심리사, 신경계 임상심리학자, 그리고 언어치료사 (각 1명)가 있었다.
클리닉 내부사진 01
사실 HIATS팀은 WorkSafe BC (BC주 노동청)와 계약이 이루어져 있어, 산재 관련 재활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팀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Concussion(뇌진탕)을 포함한 Traumatic brain injury(TBI)라는 진단을 꼭 가지고 있어야 우리 팀으로 보내질 수 있었다. 그래서 환자군 대부분이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머리를 다쳐서 오는 경우였고 (대부분 Post-concussion syndrome), 우리 HIATS팀의 Day Rehabilitation Program을 통하여 Return-To-Work(RTW) 다시 성공적으로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재활과정이 진행되었다.
클리닉 내부사진 02
보통 환자들의 경우, 증상의 정도에 따라 3-8주의 재활 과정이 성립되었고, 그 기간 동안에는 클리닉으로 매일 나와서 재활을 받을 수 있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축복받은 재활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환자들은 이곳에서 RTW 과정까지 각 치료사들의 지도와 관찰아래 대부분 성공적으로 일자리에 복귀할 수 있었다.
클리닉 내부사진 03
환자들은 오전 9시까지 클리닉에 출석?하여 2시 반까지 계획된 각종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이렇게 주 5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참석해야 했다. 심지어 참석을 안 하면 Worksafe BC에서 더 이상의 Benefits을 못 받게 되므로 어떻게 보면 출석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날 환자의 컨디션에 따라 하루 혹은 이틀 정도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사실 환자들이 처음 클리닉에 오게 되면, 일주일은 평가/검사가 주로 진행됐고, 모든 치료사들이 각자의 평가 및 검사를 마치면 환자들을 포함해 하나의 팀으로 모여서 재활과정을 함께 설계하는 시스템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미팅을 통하여 그에 상응하는 재활기간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보통 평균적으로 15-20명의 환자들이 매일 참여하였고, 그날 누구를 평가하고 치료할지, 그리고 어떤 치료를 제공할지는 전적으로 치료사들의 독립된 권한이었다. 물론, 적어도 매주 최소 2번은 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매일 진행됐던 재활 프로그램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아침 산책부터 시작해서, 환자들의 개인 운동시간 (오전/오후), 치료 및 검사시간 (오전/오후), 교육시간, 그룹 운동 (Tai Chi, Yoga, Fitness Bootcamp) 및 명상시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2시 반에 끝이 나고, 환자들은 귀가, 그리고 치료사들은 추가로 환자 개개인들에 대한 리포트 및 SOAP노트를 작성하거나, 이후 외래 환자를 봐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환자들과 자주 걸었던 거리 01
특히나 아침 9시마다 45분간 진행되는 산책은 내가 이곳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치료사마다 돌아가면서 환자들을 인솔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딱 한 번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비만 안 온다면 밴쿠버 시내와 항구를 즐기기에 이만한 시간이 없었다. 출근 시간 이후였기 때문에 항상 한적하기도 했고.
환자들과 자주 걸었던 거리 02
지금 생각해 보면 이 HIATS에서의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정말 많은 가르침을 주고 내 커리어 있어 큰 도전을 하게끔 동기부여가 되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일하면서 배운 것이 너무 많았고 나를 완전히 치료사의 길로 들어서게 한 직장이었기 때문에 특히나 인상 깊은 기억으로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환자들과 자주 걸었던 거리 03
특히 Physiotherapist (물리치료사)와 밀접하게 하나의 팀 안에서 일하면서, 캐나다 임상에서는 운동치료사가 Physio에 비해서 볼 수 있는 환자의 폭도 좁을 수 있으며 (특히, 환자가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경우), 할 수 있는 치료 중재도 어느 정도 한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환자라든지, 환자를 보는 기간, 그리고 심지어는 Income (수익)에서도 아쉬움이 크게 남았던 것 같다. 결국 '환자를 더 보고 싶으면 공부를 더 해야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Physiotherapy라는 진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었던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서 뇌진탕과 전정재활에 대해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이때부터 들었으니까.
그래서 영국에서의 박사과정도 내가 만약 이곳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전혀 생각지도 못할 도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전에는 굳이 '더 공부해야겠다'라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 축복과 배움이 넘쳤던 직장에서 일하게 된 이후부터 더 배우고 싶다는 열정과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환자들을 더 오래, 그리고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치료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경험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한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하고, 그래서 나의 치료사로서의 여정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곳에서의 직장생활이 가장 큰 의미를 담고 있지 않나 싶다.